북한의 공식적인 조선노동당 창립일은 1945년 10월 10일이다. 60년 전의 그날 평양에서는 ‘조선공산당 서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가 열렸다. 대회는 13일까지 계속됐는데 일본의 북한 연구가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는 13일 하루만 열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대회에서 현 조선노동당의 모체인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결성된다. 대회는 ‘조선 무산계급의 영수 박헌영 동지 만세’를 부르고 북조선분국이 서울 당 중앙의 직영 직속기관이라고 규정했으나 이는 수사(修辭)였고 실제로는 새로운 당 중앙의 탄생이었다. 분국 설치는 1
역사에 대한 무식과 왜곡, 젊은 세대의 정신적 무장해제 시도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법무장관이 개별 형사사건에까지 직접 수사 지휘를 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날 당사자인 강정구 동국대 교수는 한 인터넷 신문에 또 글을 올려 그 동안 자신의 발언에 대한 장황한 해명과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 글 첫머리에서 그는 20년전 박사 논문을 쓰던 때을 회고하며 "해방인 줄 알았더니 또 다시 미국-소련을 중심으로 한 외세가 우리 역사를 난도질 한것을 실증적으로 확인하고, 더구나 이런 오욕의 역사를 오욕이 아니라 자랑으로 여기도록 교
“6·25는 북한의 통일전쟁”이라는 발언의 주인공인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의 論難이 계속되고 있다. 여당은 강씨의 주장이 학문적 토론의 대상이지 사법처리의 대상은 아니라고 감싸고 있다. 더욱이 청와대 비서실장조차 강씨의 발언은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나서고 있어, 청와대가 ‘신중한 수사’를 주문했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청와대가 말하는 ‘신중한 수사’의 의미는 ‘구속 不可’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강씨는 지난달 30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토론회에서 “韓美동맹은 한국사회 主流의 心性을 ‘崇美
柳吉在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지금부터 60년 전 평양에선 ‘조선공산당 서북 5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조선공산당 북부조선 분국(分局)’의 수립을 결정하였다. 비록 서울에 조선공산당 중앙이 존재하지만 남한에 미군정이 성립되어 활동에 제약이 있으므로 평양에 그 분국을 두기로 한 것이었다. 말로는 ‘분국’이지만 오늘날 북한이 이 대회가 개최되기 시작한 날인 10월 10일을 조선노동당 창건일로 삼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도 그것은 사실상의 ‘당 중앙’이었음을 의미한다.당시의 조선노동당은 비록 조직적 기반은 미약했지
중국이 지난 8월 29일 산둥성 옌타이(煙臺)의 한국국제학교에 들어가 한국행을 요구했던 탈북자 7명을 한 달 후인 9월 29일 북한으로 강제 송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지난달 12일 톈진(天津)의 한국 국제학교에 들어갔다 쫓겨난 9명의 행방도 여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한국학교에 들어가기 전 찍은 동영상에서 ‘우리는 탈북자들입니다. 자유와 삶을 찾아 한국으로 가려고 합니다. 한국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구원의 손길을 기대합니다.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애절한 말을 남겨 놓았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탈북자 62명을 체포해
李相敦 중앙대 교수·법학1980년대 대학가에는 이른바 ‘사회과학 서적’을 전문으로 팔던 서점이 있었다.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운동권 이념서적을 주로 팔던 서점들이었다. 훗날 ‘386 세력’이 된 당시의 대학생들은 학과 공부는 제쳐놓고 무리를 이뤄 이런 책들을 읽고 밤새 토론했다. 노무현 정권의 주축세력이 된 이들의 정신세계는 이런 책들이 그려낸 것이다. 오늘날 대학가에서 그런 서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1990년대 들어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짐에 따라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한때 사라진 데다가, 우리 사회도 민주화의 길을
황대진·사회부 djhwang@chosun.com“공안부, 좀 잘하지 그랬어.” 지난 7일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가 끝난 뒤 김종빈(金鍾彬) 검찰총장은 고생한 검찰 간부들을 격려하면서 유독 공안부에만 ‘한마디’ 했다. 동국대 강정구 교수 때문이었다.한나라당 주성영·장윤석 의원 등이 국정감사장에서 “검찰이 2001년 9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강 교수를 기소하고도 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 1심 판결도 나지 않은 이유를 밝히라”고 추궁하자 김 총장은 즉답을 하지 못했다. 김 총장이 공안부장을 돌아보자 공안부장은 뒤쪽에 배석한 간부들에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은 9일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은 시민단체 간의 충돌이었는데 일부 언론과 보수 세력이 의도적으로 논란을 증폭시켰다. 韓·美 동맹을 걱정한다는 美名 아래 한·미 간 불신과 균열을 부추기는 일부 언론과 세력이 있다”고 했다.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이 시작된 지 5개월이 지나도록 여당 대표인 문 의장이 이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동상 철거 자체에 대한 입장이 아니라 ‘일부 언론과 보수세력의 태도’를 문제삼는 말이다. 문 의장뿐 아니라, 여당 지도부 누구도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한 적이
북한이 롯데관광에 개성관광 사업을 제의해 온 데 대해 롯데관광은 “국제적 비즈니스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성관광은 지난 2000년 북한이 현대에 30년간 독점사업권을 약속한 7대 사업 중 ‘관광명승지 종합개발’에 해당하며, 지난 7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현정은 현대 그룹회장을 만나 “현대가 백두산과 개성 관광을 맡아달라”고 제의했었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은 통일부에서 시범사업 승인을 받아 지난 8월 개성 시범관광을 실시했다.그런 사정을 남쪽 정부와 국민이 훤히 알고 있는데도 북
통일부 이봉조 차관은 6일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이 남북협력기금을 流用유용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현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현대는 정부와 국민에게 사과하고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현대는 “김씨가 남북협력기금을 직접 유용했다는 뜻은 아니었다”면서 “적절치 못한 표현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을 사과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그러나 이 문제는 통일부가 이렇게 현대를 윽박지르고, 정부 지원에 대북사업의 운명을 걸어야 할 처지인 현대가 바짝 몸을 엎드렸다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통일부는 김씨가 유용한 돈이
허용범·워싱턴 특파원 heo@chosun.com 새 주미대사로 이태식(李泰植) 외교부 전 차관이 오기로 되어 있지만, 작년 말 이때쯤 전임자인 홍석현 대사가 부임키로 했을 때와는 워싱턴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한마디로 새 대사의 부임이 이곳에서 별로 화제가 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주미대사가 해야 할 일이 없어서거나, 일의 중요성이 1년 전에 비해 낮아져서가 아니다.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미국 조야에 널리 퍼져있는 한국에 대한 냉소적 분위기 때문이다. 무관심과는 다른 얘기다. 예컨대, 한국의 대통령이나 책임 있는 정부 각료가 미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힐 것인지 말 것인지, 밝힌다면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할 것인지를 논의한 회의록이 4일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공개됐다. 지난달 26일 열린 인권위 전원위원회는 이 문제에 대해 위원들(위원장 포함 11명) 간에 의견이 엇갈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한 위원은 “북한의 공개 처형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남쪽에서도 인혁당 처형이나 5·18 광주 학살 등 많은 인권탄압이 있었다. 처형을 공개적으로 했느냐 비공개로 했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면서 “남쪽에서 5·18 학살자 청문회를 하듯 북의
얼치기 좌파들의 한심한 역사관신지호ㆍ자유주의연대 대표 약삭빠른 좌파 논객 진중권이 사고를 쳤다. 그는 친노매체인 데일리 서프라이즈와의 인터뷰(10월2일)에서 최근 망언을 일삼고 있는 강정구를 ‘아주 위험한 사람’으로 비판하는 재치를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강정구식의 인식은 박정희와 김일성 둘 중 하나를 편들라는 논리인데, 내가 왜 그 둘을 편들어야 하나. 둘 다 개 같은 인물들인데 말이다”라며 박정희 前대통령을 ‘개 같은 인물’로 표현하는 파격을 과시했다. 필자는 평소 진씨가 평론활동을 통해 황당무계한 주장을
납북자가족 모임의 최성용 대표가 북한으로부터 테러 위협을 받고 있다고 국정원이 통일부와 본인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최 대표는 1992년부터 납북 어부들을 비롯한 탈북자들을 중국에서 한국으로 데려오는 일을 해오고 있다.6·25 전쟁 후 납북된 사람은 486명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의 한 사람이 납북된 순간부터 그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고 남은 가족들은 수십년 동안 온갖 고초를 겪어왔다. 남북관계가 풀려나가는 지금도 한국 정부는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납북자 송환문제에 대해서는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는 형편이고, 북한은 “의거 월북
田奉根 외교안보연구원 안보통일연구부장‘베이징 공동성명’의 미래와 실현 가능성을 평가하면서 우리는 지나치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1991)과 ‘제네바합의’(1994)가 실패하였기 때문에 베이징 공동성명도 실패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이 그러한 경우이다. 그런데 과거가 미래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미래를 전망하는 데 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진행 중인 변화를 파악하는 것과 미래 창출에 대한 의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동성명의 미래에 대하여 조심스럽게나마 낙관적으로 전망하고자 한다.
이하원·정치부 may2@chosun.com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국회에 ‘북한 인권 관련 미국 출장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몇 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을 포함하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한국 외교관들의 견해’가 그것이다. 인권위는 그동안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데 소극적이었다.이 보고서에는 주미한국대사관·주유엔대표부·주뉴욕총영사관에서 일하는 현장 외교관들의 목소리가 요약돼 있다. “북한 인권 결의안에 대하여 불참 혹은 기권해 왔는데, 정부의 그런 입장이 계속될 경우 국제사회의 이해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1999
홍준호 · 편집국 부국장대우 jhhong@chosun.com 청계천이 열리고 박지성·최경주·한희원의 연이은 낭보를 접하는 기분 좋은 아침에, 어느 교수는 우리를 자꾸 과거로 끌고 간다. “대통령은 21세기, 국민은 독재시대에 있다”는 도발적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청와대 홍보수석은 “일부러 얻어맞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국민들이 잊고 있는 문제를 의제화하는 것이 전략이 돼 버렸다”고 해명했다. 마치 그 도발의 전략을 흉내라도 내듯 강정구 교수는 “6·25는 통일을 위한 내전(內戰)” “미군정 때 77%가 공산·사회주의를 지지”란 주장들을
이영기·명지대 객원교수 북한학 지난 3일은 독일이 통일된 지 꼭 15년이 되는 날이다. 독일통일의 주역인 헬무트 콜이 지난 8월 30일 독일의회 선거유세 차 함부르크에 왔을 때, 마침 그곳에 머물던 나는 그의 통일관을 듣고 싶어 유세장소에 갔었다.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들고, 독일통일과 유럽통합을 위한 그의 노력에 감사한다는 피켓을 들고 열렬히 환영했다. 1m 93㎝의 거구인 콜은 “독일통일은 하루저녁에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현 총리 슈뢰더나 외무장관 피셔 등은 독일통일을 반대했고, 또한 노조와 교회의 일부도
“한국의 主敵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 “6·25 전쟁 희생자 입장에서 미국은 생명을 앗아간 원수”라는 입장을 밝혀 온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장남이 최근 미국의 법률회사(로펌)에 취업했으며, 차남은 주한미군 배속 한국 군인(카투사)으로 군 복무를 마친 것으로 밝혀졌다. 강 교수는 먼저 유학 길에 오른 부인을 좇아 미국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1995년 교수 안식년 역시 미국에서 보냈다.강 교수만큼 분명한 목소리로 ‘미국의 개입 때문에 대한민국 현대사가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다’는 주장을 해온 사람도 드물다. 대부분의 국민이 ‘미
20·30대에 대해 기성세대가 하는 말처럼 진부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이 말만은 꼭 하고 싶다. 천문학적 대북(對北) 송전(送電)과 경수로 비용 떠안기, 빚더미 들고 오는 큰 정부, 세금 융단폭격, 사법부에까지 번진 ‘과거 청산’, 사립학교 장악 음모 등 근래 일련의 변란(變亂)적 사태를 오늘의 젊은 세대가 과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들의 시각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기에 그렇다.오늘의 20대는 자유, 개성, 탈(脫)이념, 감성, 디지털, 문화 취향, 기호주의 등의 말들로 설명되곤 한다. 특히 자유와 개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