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 정치부장 20××년 10월 미국은 대선으로 또 나라가 반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었다. 이슈 중 하나가 북한 핵이었다. 한계 상황에 이른 북한은 핵폭탄 제조를 마쳤다고 공언하고 있었다.한·미 정보 당국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북한 미사일 기술자들은 2006년에 실패한 대포동 2호의 결함을 찾아내 2007년에 기어이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대포동 2호는 일본을 넘어 4000㎞ 이상을 날아갔다. 일부 한·미 전문가들은 이 미사일의 최대 사거리가 1만㎞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본토에 다다를 수 있는 능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9일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표가 지난 7일 “미국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凍結資金동결자금을 풀어주면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데 대해 “만일 북한이 6자회담을 통해 핵 폐기 합의를 履行이행하기만 한다면 에너지 부문에서만도 매주 그 정도 규모의 돈(2400만달러·약 230억원)은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북한은 常識상식 밖의 나라다. 북한이 6자회담에서 합의했던 핵 폐기를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면 한국이 약속했던 200만kw
지난 91년 1월 걸프전 개전 직후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에 날아들기 시작하자 미군 등 연합군에는 비상이 걸렸다.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스커드 위협은 확전(擴戰)을 초래할 수 있는 중대 변수였다. 미군은 즉각 ‘스커드 사냥’에 나섰다. 당시 제한적인 미사일 요격 능력만을 갖고 있던 패트리엇 미사일로는 제대로 스커드를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 DSP 조기경보위성과 KH-12 정찰위성은 물론 땅 위에서 움직이는 장비를 추적하는 데 효율적인 E-8 ‘조인트스타스’, E-3 조기경보통제기(AWACS), F-1
“아, 그분 아직도 돌아오지 못했군요. 정부가 못하는 일을 했는데 상을 받지는 못할망정 타국 감옥에서 고초를 겪으시다니….”“우리나라에 정부가 있기는 한 겁니까. 불법 시위를 일삼는 사람들에겐 그렇게 인권을 외치더니 정작 나서야 할 때는 왜 침묵하는지요.” 중국에 수감 중인 인권운동가 최영훈씨의 기사가 보도된 10일, 아침부터 30여통의 이메일과 전화를 받았다. “남은 가족들을 돕고 싶으니 방법을 알려달라”는 문의도 많았고, “도대체 이 정권 밑에서 뭘 기대할 수 있겠냐”는 자조 섞인 의견도 있었다. 한 40대 남성 독자는 “중국법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문제를 외교적으로 푸는 最上최상의 방법은 김정일이 협상테이블을 둘러볼 때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 한국이 반대편에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걸 보고 듣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7일 訪韓방한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6자회담 당사자 5개국이 북한에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무모하게 미사일을 발사하는 나라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해선 안 된다”고 했다. 북한에 ‘한목소리(one voice)’로 경고를 보내자는 것이다.美미 제의에 대한 우리 정
지난 주말 도쿄 특파원 사무실에 관할 경찰서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공안 담당이라고 신분을 밝힌 그는 “요즘 불편한 점은 없느냐”며 이것저것 묻다가 “이상한 전화나 괴롭힘이 있으면 도움을 요청하라”며 전화번호를 가르쳐준 뒤 전화를 끊었다. 독도문제 등으로 양국 간에 감정이 악화될 때마다 인사치레 비슷하게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등의 ‘협박성’ 전화를 받긴 했지만, 경찰한테까지 안부전화를 받기는 특파원 부임 이래 처음이다. 기자가 예민해서일까. 요즘 들어 일본인들이 한국과 한국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하게 변하고 있는 것을
류근일·언론인 ‘한반도 불행의 뿌리는 무엇이며, 그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실체가 한결 명확하게 부각되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다 망한 북한을 비판하는 것은 수구 냉전, 시대 착오다”라는 말이 홍수처럼 범람했었다. ‘비판’이 있었다면 그것은 김정일 인권 말살에 대한 것, 그의 국제범죄에 대한 것, 그의 변함 없는 일방적 대남(對南) 자세에 대한 것, 국제적 약속을 저버린 그의 은밀한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것, 그리고 그런 그에게 막대한 비자금을 퍼준 것에 대한 것 등 비판해 마땅한 것을 비판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명숙 국무총리가 6일 殉職순직한 장병들의 유가족을 총리공관으로 초청하는 행사를 열었으나 西海서해교전 희생자 유가족은 한 명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서해交戰교전은 2002년 6월 29일 북한의 공격으로 우리 해군 6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한 사태다. 그해 영결식에는 물론이고 이후 4년 동안 대통령과 총리는 단 한 번도 추모식에 모습을 나타낸 적이 없다. 며칠 전 4주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족들끼리 총리공관 점심자리에 가지 말자고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니었다니, 以心傳心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그간의 맺힌 恨한이 잡힐 듯하다.엄밀히 따지
북한은 5일 새벽 3시32분 첫 미사일을 발사했다. 역시 인공위성이 아니었다. 스커드 미사일이었다. 북한이 마지막으로 스커드 미사일을 쏘았던 게 1988년이다. 이번 발사는 18년 만이다.일본 안보당국은 발사 20분 후인 새벽 3시52분 이 사실을 고이즈미 총리에게 보고했다. 고이즈미는 취침 중이었다. 보고와 동시에 긴급경보도 함께 발령(發令)했다.미국은 발사 9분 후인 3시41분 한국에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 군(軍)은 이로부터 9분 후인 3시50분 정보분석 요원 소집, 29분 후인 4시 10분엔 국방장관 보고, 79분 후인 5시
일본 총리가 북한이 5일 새벽 3시32분 첫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것은 새벽 4시였다. 한국 대통령은 새벽 5시에 첫 보고를 받았다. 일본에선 새벽 5시에 관계장관 긴급대책회의가 召集소집됐고, 한국에서 같은 회의가 열린 것은 두 시간 뒤인 오전 7시였다. 일본에선 총리主宰주재 국가안전보장회의가 7시30분에 열렸고 한국에서 대통령 주재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열린 것은 오전 11시였다.한국 정부는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초기 대응부터 일본 정부보다 1시간 늦었다. 그리고 갈수록 그 격차가 벌어졌다. 국가 최고지도자 주재로
柳浩烈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이 5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연속해서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징후가 포착된 이후 국제사회는 깊은 우려 속에 북한의 시험발사 중지를 촉구해왔고 미국과 일본은 제재를 포함한 강력한 대응 방침을 표명해왔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남한 정부는 물론 북한의 최대 우방국인 중국도 각종 채널을 통해 북한 지도부에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던 상황이었던 만큼 북한으로서는 미사일 발사가 가져올 심각한 파장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같은 정황은 미사일
북한이 5일 새벽 3시32분부터 8시17분까지 東海를 향해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와 중거리인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 등 갖가지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문제의 대포동 2호는 발사 직후 40초 만에 떨어져 실패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에도 중거리 미사일을 또다시 발사했다. 북한이 발사 시점을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춘 것이나 한국과 일본, 미국을 모두 사정거리에 둔 미사일 여러 발을 발사한 것은 북한의 多重的 의도를 헤아리게 만든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부시 미국 대통령은 그 즉시 국무·국방장관과 안보보좌관을 불러 대책
북한 미사일 문제를 다루는 노무현 정부의 외교는 요령부득 그 자체다. 한반도 안보 위기를 만들어 미국과 협상하는 식의 게임은 북한이 상용하는 수법이다. 핵 카드가 여의치 않자 이번에는 그 소재를 미사일로 바꾼 게 최근 다시 불거진 북한 미사일 문제다. 그런데 이를 다루는 이 정부의 솜씨는 영락없는 초보 수준이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은 하고, 해야 할 말은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같은 진영에서 게임을 풀어 가야 할 동료 선수들로부터는 따돌림을 받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들게 한다. 그런데도 청와대 브리핑은 “정부는 전략적으로,
1978년 8월 전북 군산 선유도해수욕장에서 사라졌다가 27년 11개월 만에 북한에서 나타나 어머니를 상봉한 김영남씨가 기자회견을 갖고 자기는 북 공작원에게 납치된 것이 아니라 사고로 떠내려가다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폭력배 같은 선배들이 여자친구들에게 빌려준 녹음기를 찾아오라며 때리기에 잠시 몸을 피하려고 나무 쪽배를 탔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망망대해였다는 것이다. 그러다 때맞춰 북한 선박에 구조됐는데 북한에 가서 한동안 있다 보니 그곳이 좋아져서 눌러 살게 됐고, 지금 黨당의 품에 안겨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다
◇ 남성욱 고려대 교수 28년 만에 금강산에서 이뤄진 김영남씨 모자(母子)의 상봉은 남북 분단을 다룬 어떤 영화의 장면보다 감동적이다. 평양에서 단정하게 차려 입고 나타난 후손들이 할머니에게 큰절을 올리는 장면부터 모자 간 혈육의 정을 확인하는 눈물 바다까지 감격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상봉 드라마 중 관심의 초점은 역시 김씨와 일본인 피랍자 요코다 메구미씨와의 부부관계다. 납치 드라마는 한반도 무대를 넘어서 현해탄을 건너는 국제적인 삼각 구도다. 제삼국에서 피랍자 간에 이뤄진 혼인으로 한·일(韓·日)의 부모는 자식들의 생사도 모
제네바대표부 대사를 지낸 정의용 열린우리당 의원은 26일 국회에서 “최근 정부 고위당국자(대통령)께서 ‘적어도 일본이 우리를 상대로 挑發도발하지 못할 정도의 국방력을 갖고 있다’고 言及언급하셨는데 그런 언급이 과연 상대국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겠느냐에 대한 깊은 생각이 따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점잖게 이야기했지만 뼈있는 말이다. 이 뼈를 그냥 흘려버려서는 안 된다.국방장관을 지낸 조성태 열린우리당 의원은 며칠 전 국회에서 時限시한을 정해 작전統制權통제권 환수를 서둘러서는 안 된다면서 “(나라 안보가) 너무 아슬아슬해서 견디기 힘들다
28일 금강산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납북된 김영남씨와 어머니가 만났다. 고교생이던 김영남씨는 1978년 8월 전북 군산 선유도해수욕장에 놀러갔다 실종됐다. 그로부터 27년 11개월 만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82세의 어머니 최계월씨는 까까머리 고교생 적에 실종됐다가 앞머리가 벗어진 45세의 중년이 돼 나타난 아들을 얼싸안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통곡했다. 김영남씨가 1994년에 사망했다는 요코다 메구미씨와의 사이에 낳은 은경양과 새 아내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 철봉군도 처음 보는 남한의 할머니에게 큰절을 올렸다. 어느날 느닷없이 사
오는 9월쯤 韓美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청와대가 밝혔다. 現 정부 들어 여섯 번째 한미 정상회담이며 실질적으로 마지막 회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정부는 먼저 한미 두 나라 사이 중요 현안들에 대해 양국 간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번 정상회담에 임해야 한다. 지금 북한 미사일문제 하나만 봐도 미국은 ‘미사일’이라고 보는 것을 한국은 ‘인공위성’이라고 달리 부르고 있다. 北核, 위조달러, 북한인권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의 입장은 너무나 벌어져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미관계는 건강하게 관리되고 있다”
金基正 ㆍ 연세대 교수 ㆍ 국제정치학동아시아 국제정치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 준비를 둘러싼 긴장 때문이다. 이미 치열한 외교공방이 시작됐지만 지역질서에 던지는 파장 또한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동아시아 지역질서는 태생적으로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역내(域內) 끊임없는 군비경쟁도 원인이며,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북한의 미사일 사태는 이러한 불안정한 지각판의 틈새를 뚫고 분출하려는 화산과 같다. 미사일 파동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대목은 일본의 행보다. 북한의 군사적 움
국방장관을 지낸 조성태 열린우리당 의원은 22일 국회에서 윤광웅 국방장관이 戰時작전통제권을 2012년까지 미국으로부터 還收할 것이라는 뜻의 답변을 하자 “작전권 환수의 時限을 정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이 객관적으로 사라진 게 명확하다고 판단되는 안보적 환경이 마련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대통령이 그렇게 (시한을 정하는 식으로) 말씀하더라도 (장관은) ‘적절치 않다’고 건의하고 안 되면 장관직을 거는 것이다. 나는 그 부분이 너무너무 아슬아슬해서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조 의원은 이날 국방장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