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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新義州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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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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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 15: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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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도 소재지. 동부는 의주군과 피현군, 남부는 룡천군과 접하며 북쪽에는 이성계의 회군으로 유명한 위화도가 있고 서쪽에는 유초도 등 10여개의 섬들이 있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중국 동북지방의 단둥시와 접하고 있다.

신의주는 근대에 들어 생긴 행정단위로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이 1905년 경의선(평양~의주)을 완공하면서 새로운 의주, 즉 신의주로 정함에 따라 신설된 도시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평안북도의 도 소재지는 의주였으나 1921년 신의주로 이전했다. 해방후 여러 차례에 걸쳐 룡천군, 피현군, 의주군과의 사이에 행정구역개편이 있었다.

현재의 행정구역은 49개 동과 9개 리(상단, 하단, 중제, 삼교, 삼룡, 토성, 성서, 다지, 류초)로 되어 있다.

신의주에는 평안북도 예술극장, 경기장, 영화관, 도서관, 유원지가 있으며 차광수신의주제1사범대학, 신의주제2사범대학, 신의주교원대학, 신의주의학대학, 신의주농업대학을 비롯한 전문학교, 인민학교, 고등중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의료시설로는 신의주의학대학병원과 신의주 제1병원이 있다.

자연환경

압록강 하류 연안에 자리잡고 있는 신의주시의 전반적 지역은 평탄한 평야지대로 되어 있다. 시중심부의 해발평균높이는 5∼10m로서 매우 낮으나 동부와 서부 일대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는 50∼100m정도의 언덕들이 있다.

신의주시는 대륙성기후의 특징을 나타내나 바다와 가깝고 지대가 낮아 해양성기후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연 평균기온은 8.8℃, 1월 평균기온은 -8.7℃, 8월 평균기온은 24.1℃이며, 연 평균강수량은 1058㎜이다. 첫서리는 10월 28일경, 마감서리는 3월 26일경에 내린다.

북부에서 흐르는 압록강과 룡천군과의 경계를 이루는 삼교천이 있다. 산림은 시넓이의 약 8%이며 주로 북동부 일대에 퍼져 있다. 주요 나무 종류는 소나무와 참나무이다. 토양은 대부분 충적지토양과 논토양이며 토층이 두터워 농작물 재배에 매우 유리하다. 시에는 석탄이 묻혀 있다.


조선시조새와 시조개구리

김일성 주석이 이름을 붙인 것으로 유명한 조선시조새와 시조개구리는 신의주시 백토동에서 발견됐는데, 북한은 이 화석들이 1억 5000만년전인 중생대 쥐라기시대의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조선시조새'로 명명된 화석은 한반도에 생존했던 조류의 하나로 이 지역의 인류기원 문제를 해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라고 북한 학자들은 주장한다.

발굴된 시조새의 화석은 머리와 날개뼈 및 날개깃 등 세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머리부분의 경우 길이 32㎜, 너비 15㎜의 크기이며 상당히 파손된 상태에도 불구하고 눈주위와 일부 이빨을 구별할 정도인데다 목과 머리뼈가 부분적으로 연결돼 있다. 또한 날개뼈 특히 오른편 날개뼈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 있고 날개깃도 부채살 모양으로 비교적 잘 보존된 상태이다. 북한 학자들은 '조선시조새'의 화석이 독일에서 발굴된 시조새와는 두번째와 세번째 발가락의 길이가 각각 달랐다면서 이러한 특징은 한반도의 시조새가 독자적으로 진화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화석와 함께 백토동에서 발견된 개구리 화석에 대해서도 북한은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개구리류의 화석은 약 6000만년전인 신생대 제3기이후 시기의 지층에서 발견되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신의주에서 그보다 9천만년이나 앞선 쥐라기층에서 개구리화석이 발굴된 것은 "지구상에서 이미 중생대에 개구리류의 급속한 진화가 이루어졌으며 우리나라 서북부는 바로 이러한 진화의 중심적인 마당에 속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확고한 증거가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조개구리는 지금까지 발견된 다른 개구리화석과는 달리 「등마디뼈의 마지막 2개마디가 앞뒤로 오목하게 패여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화석발굴 보고를 받은 김일성은 이 화석의 이름을 <시조개구리>로 부르도록 하는 한편 김일성종합대학 자연박물관에 보내 영구보존토록 조치했다.


주요산업 및 특산물

기계, 화학, 방직공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기계공업에서는 각종기계, 화학공업에서는 화학섬유와 종이생산이 대표적이다. 또한 신발과 화장품 생산도 북한지역내에서 비중이 있으며 특산물로는 각종 법랑칠기가 있다. 이 시는 서해안의 수산기지이며 특히 원양어업기지이다.

신의주시는 제지공업과 방직공업 등 경공업이 발달했다. 이 지역의 제지공장들은 평북 신도군의 비단섬에서 나는 갈대를 원료로 하고 있으며 모조지, 화보지, 담배종이 등 다양한 종이를 생산하고 있다. 신의주화학공장을 비롯해 방직공장, 모방직공장 등에서는 각종 양복천과 모직물, 안감천 등을 생산하고 있다.

토양의 대부분이 충적지 토양과 논 토양이며, 토층이 두꺼워 농작물 재배에 유리하다. 경작지는 논이 51%, 밭이 47%를 차지하며 벼, 강냉이, 콩 등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채소생산을 공업화하여 배추, 무, 가지, 호박, 오이, 고추, 파 등을 분수식 관개체계로 재배하고 있다.


락원의 봉화

장기 침체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제2천리마대진군을 주창한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가 이 대진군을 선도해 온 기치를 '성강의 봉화'에서 '락원의 봉화'로 바꿔들었다.

김 총비서는 1998년 3월 9일 함북 김책시의 성진제강연합기업소(성강)를 현지지도하고 성강이 새로운 천리마대진군의 선봉에 설 것을 주문했다. 성강은 김 총비서의 기대에 힘입어 2주 뒤인 3월 23일 현지에서 종업원 궐기모임을 열고 전국의 모든 공장·기업소에 '사회주의 경제건설에서 새로운 대고조'를 호소함으로써 '성강의 봉화'을 점화하였다.

이후 '성강의 봉화'는 제2의 천리마대진군의 견인차로서, 부(負)의 성장을 거듭하던 북한 경제를 되돌려 세워 회생의 가능성을 열어준 촉매로서 한 몫을 해냈다. 북한도 김 총비서의 성강 현지지도를 1956년 12월 김일성 주석이 남포직할시 강선제강소를 현지지도하고 천리마운동을 제창했던 사실에 비유할 정도로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북한이 '성강의 봉화'를 내리고 '락원의 봉화'를 높이 든 데는 2000년 1월 25∼28일 김 총비서가 평안북도 공업부문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김 총비서는 락원기계공장(현 락원기계연합기업소)를 비롯해 구성공작기계공장, 12월5일청년광산, 양책베어링공장, 신의주신발공장, 신의주방직공장 등 여러 공장·기업소를 둘러보았으며, "공장,기업소의 책임일꾼들을 만나 경제사업에서 새로운 혁명적 전환을 일으키는데 지침이 되는 강령적인 과업을 제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2000.1.30)이 전했다.

김 총비서는 이 과정에서 특히 락원기계공장에 각별한 관심을 표시하고 이 공장이 제2의 천리마대진군을 이끌어갈 새로운 봉화의 주역으로 나설 것을 요구했다. 락원기계공장은 2000년 2월 3일 김 총비서의 '현지말씀'관철 명목의 종업원 궐기모임을 열고 전국의 공장·기업소에 생산혁신과 분발을 호소했으며, 안주·덕천 탄광과 무산광산·김책제철소·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 등 수많은 생산단위들이 이에 호응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북한 당기관지 노동신문은 2000년 2월 6일 '새로운 호소따라 새로운 대고조에로' 제하의 사설을 통해 '락원의 봉화'를 선창했다. 사설은 "성강의 봉화에 이어 타오른 락원의 봉화는 강계정신으로 제2의 천리마대진군에 새로운 박차를 가하여 강성대국 건설의 목표를 기어이 점령하기 위한 총돌격전의 봉화"라며 락원의 봉화따라 전체 주민이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총궐기하자고 촉구했다. 이후 락원의 봉화는 시대의 구호가 되어 각 신문·방송 등을 장식하고 있다.


교통 및 명소

신의주는 평의선의 종점이며 여기서 중국으로 통하는 철도가 이어진다. 평의선의 남신의주역에서는 덕현선(남신의주~의주~덕현)과 백마선(남신의주~피현~염주)이 갈라진다. 도로는 신의주~평양 사이, 신의주~의주, 신의주~피현 사이의 길이다.

신의주 항을 통하여 압록강 하류의 섬들과 룡암포, 비단섬, 철산, 정주, 남포, 해주에 이르는 구간에서는 화물수송이, 압록강 상류로는 의주, 옥강, 청성까지의 구간에서 화물과 여객 수송이 진행된다. 신의주~류초리~황금평리~비단섬 사이에 여객선이 다닌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의 단둥시와 인접하고 있어 평양~베이징 국제열차가 정기적으로 운행된다.

압록강철교: 중국과 통하는 관문으로서 신의주시의 유명한 다리이다. 1911년 완공된 이 철교는 중국의 단동과 신의주시를 연결하는 길리 94m의 회전개폐식 철교이다. 다리의 기둥은 총 12개로 되어 있고, 아홉번째 교각은 선박이 통과할 수 있도록 개폐식으로 되어 있다. 1934년부터는 교량보존을 위해 개폐를 중지했으며 1945년 8월 15일 광복기념으로 한 번 개폐된 적이 있다.

신의주시에는 특이할만한 사적은 없고 압록강을 건너는 만주땅을 감시하는 초소와 봉수대의 자취만이 남아 있다.


신포향과 락원의 10명당원

'락원의 10명당원'이란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김일성 주석의 교시를 무조건 관철해 '영웅적 위훈'을 창조했다는 평북 신의주 소재 락원기계제작소(현 락원기계연합기업소) 주물직장의 10명 당세포 당원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6.25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2년 6월 21일 김 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당세포총회를 열고 전시에 필요한 무기와 군수물자 공급을 맹세한뒤 자신들의 이날 결의를 기어이 실천에 옮김으로써 대중적 영웅주의의 표본이 됐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이날 회의에서 김 주석이 전후 복구문제를 걱정하자 "너무 근심하지 말라"며 강한 자신감과 결연한 의지를 표시, 훗날 김 주석이 "일생을 통해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는 여성당원 신포향의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신포향은 1984년 4월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그가 속해있던 주물직장은 신포향주물직장으로 명명됐다.

'락원의 10명당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날의 주물직장 당세포총회의 실례는 이후 이 공장은 물론 각지 공장·기업소로 확산돼 대중적 영웅주의를 부추기는 촉매가 됐다. 락원기계제작소는 전후인 1956년 4월 김 주석이 '농촌수리화'를 위해 대형 양수기 생산과제를 제시하자 전후의 척박한 여건 속에서도 북한 최초의 대형 양수기인 '락원1'호를 생산해 전후복구 건설의 선봉에 섰다.

또한 58년 6월 김 주석이 대형 굴착기가 없는 현실에 아쉬움을 표시하자 설계도면 한 장 없는 상태에서 1회 굴착능력이 1㎥인 '천리마'호 굴착기를 제작해 다시한번 김 주석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후에도 이 공장은 4㎥짜리 '장백'호 굴착기를 비롯해 타격식(打擊式)착정기와 고성능 회전식 착정기를 각각 처음으로 생산해 주요 고비마다 북한 경제를 견인하는 주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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