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53년 3월 소련의 스탈린 사망후 권력을 장악한 흐루시초프가 평화공존노선을 주창함에 따라 국제환경은 동서냉전적 상황으로부터 평화공존을 위한 긴장완화의 분위기로 바뀌게 되었다.
2.1954년 1월 일본에서는 '요시다 정권'에 대신해 '하토야마 정권'이 등장한다. '하토야마 정권'은 '요시다 정권'의 대미의존적 외교정책을 비판하면서 소련,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관계회복을 통한 일본의 국제적 지위의 향상을 추구한다.
이와 같은 동북아시아의 정세 변화는 북한으로 하여금 적대적인 대일본정책을 유화·접근정책으로 전환토록 하는 배경으로 작용했으며, 이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북한의 관심을 증대시켰다.
둘째, 재일조선인운동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의 내부에서는 재일한인을 일본 사회주의혁명에의 전위부대로서 사용하려는 일본 공산당의 극좌노선에 대해서 회의를 갖는 '민족주의 세력'이 대두했다. '민족주의세력'은 재일한인들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지만 조국을 가진 독립된 국민임으로 일본 혁명이 아닌, 자신의 조국과 자신들의 권익을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세력은 북한의 적극적 지원하에 재일한인들 사이에서 그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2.1955년 5월 민족주의 세력의 주도하에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가 해체되고 조총련이 결성되었다. 조총련은 그 출범에 있어 북한의 해외공민단체로서 북한 조선로동당의 지도노선에 따를 것을 선언하였다.
이는 해방후 재일 한인사회의 좌파 운동을 사실상 지도해 왔던 일본공산당의 지도력이 상실되고, 그에 대신해 조선로동당이 지도권을 장악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재일한인에 대한 북한의 영향력은 조총련 조직의 성장.확대와 함께 비약적으로 증대되었다.
1955년 조총련 결성후 1960년대 말까지 북한과 일본공산당은 조총련 관계자들과 일본공산당과의 1945년 해방 후 약 10년간에 걸쳐 형성된 인적·조직적 유대관계를 매개로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였다.
작성일:2013-10-29 16:40:14 203.255.111.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