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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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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조선
등록일
2013-10-29 16:11:00
조회수
404
북한에서는 기독교를 "피착취 근로대중의 해방투쟁을 말살하고 착취제도를 영구화하기 위한 착취계급의 정신적 무기"라고 규정하고 있다('정치용어사전', 사회과학출판사, 1970, p.80).

또한 기독교는 봉건적 착취와 위계제도를 신성화하는 정신적 수단이었으며 온갖 선진사상과 과학의 흉악한 원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18세기부터 선교사들을 침략의 앞잡이로 내세워 조선인민들에게 종교적 무저항주의, 숭미사상을 불어넣으면서 침략의 기반을 닦았으며 오늘날 남조선에서는 미제의 식민지 예속정책을 변호하고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정신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북한주민에게 교육하고 있다.

8.15 해방직후 북한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는 명칭을 얻고 있었다. 그 당시 1400여 개의 교회와 12만 명의 기독교신자 및 260명의 성직자가 있었다. 평양에는 40만 명의 인구 중 기독교 신자가 2만 명이었고 교회도 70여 개에 달하였다.

북한에서도 특히 기독교도가 많았던 지역은 평안도 지방이었는데, 평북 선천, 평남 평양, 평북 의주, 평북 피현 등이 대표적인 지역이다.

해방후 북한으로 들어온 김일성이 공산체제수립과 절대권력수립, 개인우상화를 추진하는데 기독교가 가장 큰 걸림돌로 간주되었다. 그 당시 북한의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확장속도가 빨랐다. 따라서 기독교 신자들에 대한 탄압 역시 타종교에 비해 심하게 진행되었다.

북한의 거의 모든 학교나 교과서, 등에는 미국선교사들의 야만적인 행위를 묘사한 사진이나 그림 등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선교사가 사과밭을 지나다가 떨어진 사과를 주워먹는 아이를 발견하고 붙잡아서 병원으로 끌고가 어린애의 이마에 `청강수`로 "도적"이라고 썼다는 이 사진은 거의 모든 학교에 걸려 있다. 이런 식으로, 청소년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심을 주입시키고 있다.

또한 예술영화 '한 의학자의 길'에서는 하늘처럼 믿었던 미국목사 '리처드'가 인민군에 의해 미군이 쫓기자 동료를 배반하고 먼저 도망치는 장면 등을 보여주면서 기독교를 침략자의 앞잡이로 묘사하고 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일정한 구역이 설정된 산간오지로 추방되었으며 1960년부터 체계적으로 생겨난 정치범수용소에 모두 수감되었다. 따라서 많은 실향민 중에는 종교적인 탄압을 피해 피난 온 기독교인들이 유난히 많다.

1980년 이후 북한의 종교정책이 미래지향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1988년과 1989년에 평양에 봉수교회와 칠골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이는 형식적으로나마 북한의 종교정책, 특히 기독교에 대한 과거의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표면상 인정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파악된다.
작성일:2013-10-29 16:11:00 203.255.11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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