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제목

특권층 - 유형

닉네임
NK조선
등록일
2013-10-28 15:21:15
조회수
713
◆ 백두산줄기

피라미드 형태의 세력권을 형성하는 북한 특권층의 정점에는 일제시대 때 김일성 주석과 항일투쟁을 한 이른바 항일빨치산 그룹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들은 '백두산줄기'로 통한다.

'백두산줄기'라는 용어는 김주석과 항일유격대시절을 함께한 혁명1세대들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같은 정통성을 지닌 이들이라 하여 붙여진 별칭이다.

따라서 북한판 '성골'에 해당하는 백두산줄기는 각계각층의 고위직을 독점하는 최고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들에게는 의식주를 비롯하여 진학, 직장배치, 승진 등 모든 부문에서 엄청난 특혜가 주어진다.

백두산줄기 가운데서도 김주석과 혈연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가계 인물들은 특권층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으며, 북한판 로열패밀리로 통한다. 이들은 크게 김주석 친가쪽인 전주 김씨(金氏) 혈통과 김주석 외가쪽인 칠골 강씨(康氏) 집안으로 구별된다.

1999년 남한으로 온 북송재일교포 김현식에 따르면 현재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자신의 가계 중 김일성(부), 김정숙(모), 김경희(여동생) 가족은 '원가지'로, 김성애(김주석의 후처)와 그녀의 자식인 이복형제 김경진, 김평일, 가족은 '곁가지'로 구분하고 있다고 한다.(김현식, '북한에서의 지역감정', 통일정책연구소, 1999.12.).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980년대로 접어들던 김위원장 후계체제확립시기에 김주석의 후처 김성애와 이복동생 김평일이 속한 곁가지는 김위원장에 의해 의도적으로 견제되었고 권력이나 특권의 중심으로 멀어진 무늬만의 로열패밀리로 전락했다고 한다.

현재는 김위원장, 친여동생 김경희, 그녀의 남편 장성택, 김정일의 전처와 현처 등 김위원장의 측근만이 가장 막강한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남한으로 망명해왔던 이한영씨는 김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로서 방송과 언론을 통해 북한체제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생활을 비난하다가 결국 대남 공작원에 의해 권총피살되었다(1997.2).

◆ 혁명가유자녀

'혁명가유자녀'란 북한건국과정이나 6·25전쟁 때 사회주의혁명과업 수행에 있어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 평가되는 이들의 가족과 자녀들을 통칭하여 일컫는 말이다.

즉, 부모들이 일제시대에 항일무장투쟁을 했거나 6·25전쟁시 공로를 세운 이들의 자녀들을 말하며, 이들은 성분분류상의 '핵심계층' 중에서도 정예로 인정되어 특권층으로 편입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들 중 상당수는 백두산줄기 자제들과 함께 만경대혁명학원(남)과 강반석혁명학원(여)에 다니게 된다고 한다.

잘 알려진 바대로 만경대혁명학원 출신들은 김위원장과 하나의 공동운명체라고 할 수 있는 혁명2세대라고 할 수 있다(연합통신, 1994.7.11).

이들은 북한에서 출신성분이 가장 좋은 핵심계층으로 교육받은 후 당간부로 발탁되는 것이 대부분이나, 탈북자들에 따르면 특권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부모가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한다.

종종 이들 역시 넓은 의미에서의 '백두산줄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 신흥특권층

1992년에 남한으로 온 강철환씨는 북한에서 특권층이란 권력과 동시에 물질적 부유함, 그 중에서도 특히 외화를 얼마나 만질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경제난으로 인해 물자수급이 어려워진 상황이기에 기존과 같은 정치적 권력중심의 특권층보다 성분이 그다지 좋지 않더라도 외화를 많이 구할 수 있는 이들이 더욱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강씨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까지만해도 북에서의 특권층은 주로 권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으며 권력자에겐 자연히 부도 함께 따랐다.

그러나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경제난이 닥치자 웬만한 권력층에게는 과거와 같은 부가 주어지지 않기 시작했고 부정부패도 만연하기 시작했다.

한편 일본이나 미국에 친척을 둔 교포들 가운데 많은 돈을 송금 받는 계층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의 생활수준은 최고위층의 생활과 맞먹거나 오히려 훨씬 더 부유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재일교포를 친척으로 둔 이들은 '후지산줄기'로, 재미교포나 정주영 같은 남한친척을 둔 이들은 '한라산 줄기'라고 부르는 신조어가 생겨나게 되었다.

최악의 경제난으로 인해 북한화폐로는 살 수 있는 물건이 거의 없어졌고 달러나 엔과 같은 외화를 가져야만 좋은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으며, 최고위층이 아니고서는 웬만한 간부들조차 달러를 구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보다 더 힘들다는게 탈북자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흥특권층들에게는 일반 간부들조차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과거에는 정치적 권력에 물질적 부가 따라붙었으나, 지금은 물질적 부에 정치적 권력이 따라붙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988년 9월 남한으로 망명해온 김정민씨는 "평양 변두리에서 작은 무역회사를 경영하다가 당중앙위원회에서 북한의 고급당간부학교 등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대양무역회사' 사장으로 가게 되었을 때, 당간부전용아파트로 이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무역일을 하면서 은밀하게 모아둔 외화로 사놓은 컬러TV나 승용차, 호화가구를 옮기다가 당간부들의 눈에 띄어 비판받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 역시 북한에서 달러는 가장 긴요한 생활기반이며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도구이기에 당간부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외화를 얻기 위해 애를 쓰며 지위가 높을수록 많은 외화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연합통신, 1991.5.8).
작성일:2013-10-28 15:21:15 203.255.111.242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함께하는 협력사
통일부
NIS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대한민국 국방부
외교부
이북5도위원회
사단법인 북한전략센터
  • 제호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 대표전화 : (02)724-6650,6523
  • E-mail : nkchosun@chosun.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해범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kchosun@chosun.com
ND소프트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