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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성(平城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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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조선
등록일
2013-11-01 15:47:20
조회수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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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의 도 소재지. 서부는 숙천군, 평원군, 평양시 순안구역, 북부는 순천시, 동부는 은산군, 평양시 강동군, 남부는 평양시 룡성구역, 은정구역, 삼석구역과 맞닿아 있다.

1965년 1월 행정구역개편으로 평양시 룡성구역 하리, 하차동, 순천군의 사인리, 덕산리, 봉학리, 순안군의 상차리를 분리, 평성구(사인동, 봉학동, 덕산동, 하리, 상차리, 하차리로 구성)를 신설하였다. 1969년 12월 시로 승격되었다. 이 도시는 그 동안 다른 지역과는 달이 여러 차례에 걸쳐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1974년에야 비로소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21개 동(구월, 보덕, 삼화, 송령, 상차, 하차, 문화, 오리, 두무1, 두무2, 평성, 은덕, 덕성, 옥전, 양지, 중덕, 역전, 주례, 봉학, 학수, 랭천)과 13개 리(월포, 삼릉, 후탄, 청옥, 하단, 어중, 률화, 자산, 자모, 운흥, 고천, 백송, 화포)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환경

평성시의 지형은 일반적으로 대봉산맥이 뻗어 있는 서부지역이 높고 동남부지역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져 대동강 지역에는 낮은 언덕들과 평야들이 펼쳐져 있다. 서쪽에는 삿갓봉(318m), 청룡산(547m), 룡골산(400m) 등이 솟아 있다. 또 북동쪽에는 달래봉(268m), 남쪽경계에는 백족산(393m)이 솟아 있다.

연 평균기온은 8.9℃, 1월 평균기온은 -9.0℃, 8월 평균기온은 23.7℃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316.3㎜이다. 첫서리는 10월 14일경에, 마감서리는 4월 23일경에 내린다. 평성시의 동부에서는 대동강이 북남방향으로 흐른다. 여기로는 봉학천, 후탄천, 평성천, 백송천 등 여러 개의 하천들이 흘러든다. 시에는 평성저수지를 비롯한 여러 개의 저수지들이 있다.

평성시의 넓이에서 산림넓이는 54%를 차지한다. 산들에서는 소나무, 참나무, 아카시아나무, 밤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암석구성은 화강편마암, 화강반암, 석회암, 대리암 등이다. 토양은 대부분이 산림갈색토양이며 하천연안에는 충적지토양이 분포되어 있다.

주요산업 및 특산물

경공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주요 제품으로는 합성가죽, 고무줄, 시계 등이 있다. '장수술'과 '장수버섯'이 특산물이다.

경작지는 시 넓이의 약 33%를 차지하며, 그중 논은 24.3%, 밭은 63.4%, 과일밭은 8.6%를 차지한다. 주요 곡물은 벼, 강냉이, 콩 등이다.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공장: 평양상표인쇄공장

1996년 한국에 온 한 탈북자에 따르면 평남 평성시 배상동에 위치하고 있는 평양상표인쇄공장(일명 62호공장)은 북한의 유일무이한 조폐창으로 북한 공식화폐인 '원화'와 '외화와 바꾼 돈표'는 물론 위조달러까지 찍어내고 있다.

평양상표인쇄공장은 1977년 사회안전성(인민보안성)이 건설하기 시작해 1981년 완공했으며 관리운영으로부터 공장 경비에 이르기까지 전부 사회안전성(인민보안성)이 직접 관장하고 있다. 이 공장 안에 있는 은빛무역회사가 종이, 붉은 수은 등 화폐를 찍어내는데 필요한 자재와 설비 등의 수입을 전담하고 있으며 해외에서의 위조달러 세탁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위조달러 세탁은 러시아 상인들에게 위조달러를 주고 대량으로 사들인 물건을 중국으로 가져가 되팔아 진짜 달러를 획득하는 방법이 이용됐다고 그는 전했다.


교통 및 명소

시에는 평라선과 평양, 순천, 강동, 성천, 평원, 대동, 증산으로 가는 도로가 있다.

봉학동의 안국사와 대봉산성이 있다.

안국사(安國寺): 평성시 봉린산의 아늑한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고구려 제21대 문차왕(서기 503년)때 창건한 절이다. 옛날에는 봉린사(鳳麟寺)라고 불렸으며,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1654년과 1785년 두 번에 걸쳐 재건, 개수를 하였다. 현재 북한에 남아있는 사찰 가운데 유일한 2층건물(불전)로 되어 있으며, 축조기술이 뛰어난 9층탑이 또한 유명하다.

경신리 1호무덤(한왕묘): 평성시 중심가에서 약 11km떨어진 경신리 대동강 기슭에 있다. 이 무덤은 '황제묘'라는 또 다른 이름이 붙을 정도로 큰 규모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봉분터의 기단을 돌로 쌓아 올려 더욱 웅장해 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무덤은 고구려 전기의 적석무덤이 후기의 돌칸 흙무덤으로 계승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의 하나로 꼽힌다.

지경동 1.2호 무덤: 평성시 지경동 부황산 언덕에 동서로 약 20m 간격을 두고 있다. 두 무덤이 다 감이 있는 외칸짜리 돌칸흙무덤인데, 오래전에 도굴당해 매우 손상된 상태이다. 여기서 발굴된 마구들은 화려할 뿐만 아니라 말타기에 매우 편리하게 되어있어, 말타기 풍속과 상무의 기풍을 지녔던 고구려 사람들이 마구를 개선하고 말을 꾸미는데 큰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성에 묻힌 무정(武亭, 본명 김무정), 북한서 명예회복

무정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전신인 팔로군 포병사령관을 지냈고 루이진(瑞金)에서 옌안(延安)까지 2만5000여리 장정에도 참여하는 등 전설적인 항일용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입북후에는 '연안(延安)파'의 거두로 정치무대에서 활동했으며 6.25전쟁이 발발하자 2군단장으로 참전했다가 당시 김일성 최고사령관의 평양사수 명령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무정이 명예회복을 하게 된 것은 1994년 4월께로 김일성 주석이 평양 만수대언덕에 있는 조선혁명박물관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김 주석은 혁명박물관에 있는 전직 고위인사들의 사진과 명단을 둘러보다가 무정장군의 이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가 비록 큰 공로는 없지만 그렇다고 종파주의자도 아니었다"며 그의 정치적 명예를 회복시켜줄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무정의 아들 원덕씨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뒤늦게 열사증이 수여되고 사회적 신분과 처우도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1999년 탈북한 김길선씨는 전했다(연합통신 인터뷰, 1999.7.6). 김씨는 그러나 이것이 무정에 대한 완전한 정치적 복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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