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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보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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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조선
등록일
2013-10-30 15: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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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
북한은 보천보전투를 김일성의 대표적인 항일무장투쟁 업적이라 주장하고 있다.

김일성의 회고록과 북한의 역사관련 서적들에 따르면 보천보를 전투지역으로 정한 것은 국내진공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함과 동시에 당시 일본군에게 포위당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를 구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즉 이 두 가지 목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가 포위된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군의 요충지인 보천보를 습격했다는 것이다.

보천보전투에 대한 북한의 자료에 의하면 김일성 부대는 1937년 6월 3일 압록강의 경비망을 뚫고 진군하여 군대를 정비한 뒤 보천보 부근 산 속에 집결하여 전투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1937년 6월 4일 밤10시 부대원 150명이 2개의 습격조와 2개의 차단조, 1개의 정치공작조로 나뉘어 제1 습격조는 경찰관 주재소·면사무소·소방서를 공격하고, 제2 습격조는 우편국·농사시험장·산림보호구를 습격하여 기관 건물들을 전소시키고 일제군경을 전멸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공격이 계속되는 동안 정치공작조는 김일성이 작성했다는 [조국광복회 10대 강령]과 포고문, 그 밖의 격문들을 뿌리면서 정치선전을 전개하였다고 한다. 포고문의 내용은 ‘조선인민들은 조선인민혁명군에 호응하여 일제 통치를 분쇄하고 조선인민의 정부를 수립할 것’을 호소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김일성의 군대는 이로써 국내 진공의 목적을 달성하고 철수를 하였는데, 철수시 많은 주민들이 이들을 도와서 노획물자 운반에 동참하고 가담을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제 군경들은 김일성 군대에 대한 추격전과 포위작전을 시도하였으나, 6월5일 구시산에서 김일성 부대에게 패했다고 한다. 이후 김일성 부대에 대한 추격은 1937년 6월 말 간삼봉 고지까지 계속되었으나 결국 일본군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패주하였다고 북한은 주장하고 있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을 독립운동의 중심으로 선전하고 기념하여 왔다. 특히 보천보전투에 대해서는 혁명전적지와 혁명박물관을 설립하고,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보천보 횃불상을 만드는 한편, 북한의 대표적인 음악단인 보천보전자악단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실제 보천보전투는 북한의 주장과는 달리 소규모의 습격전투였으며 사상자도 많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보천보가 인구 1,300여 명의 작은 마을이고 무장병력은 주재소 순사 5명뿐이었으며 이들을 상대로 한 물자보급투쟁이었다는 주장이 있는 것을 볼 때, 북한에서 ‘역사적인 항일 승리전투’라고 하는 것은 과대평가이다. 스칼라피노는 ‘한국공산주의 운동사’에서 보천보 사건 이후 수많은 검거가 이어져 이 지역의 공산주의 활동은 매우 어렵게 되어 북한의 보천보전투에 대한 찬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국경지대에 대한 일제의 대규모 토벌과 검거가 계속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보천보전투는 당시 언론에 의해 크게 보도되었다.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막 무기정간에서 풀려난 동아일보는 6월 5일자로 두 차례에 걸쳐 호외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언론의 관심에 대해 이종석이나 와다 하루키는 보천보전투가 1930년대 말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하였던 시기에 국내에서 거행되었다는 점과, 당시 1930년대 민족해방운동의 침체로 인해 패배주의에 빠졌던 우리 민족의 식민지 조선 상황의 탈피 욕구를 반영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이 사건을 계기로 김일성이라는 이름은 당시 민중들의 뇌리에 강인하게 자리잡게 되어 해방 후 그의 지도자 부상에 유리한 배경이 되었다.

[참고문헌]

력사사전I, 사회과학출판사: 1972
조선대백과사전11, 백과사전출판사, 1999
조선전사19,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1
스칼라피노·이정식, 한국공산주의 운동사1, 돌베개: 1986
이종석, 현대 북한의 이해, 역사비평사: 1995
와다 하루키, 김일성과 만주항일 전쟁, 창작과 비평: 1992
작성일:2013-10-30 15:22:38 203.255.11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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