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제목

강계(江界市)

닉네임
NK조선
등록일
2013-10-04 16:04:22
조회수
2908
첨부파일
 3170.gif (14347 Byte)
'강계미인', '강계포수', '강계산삼'으로 유명한 강계시는 경치가 수려한 고장으로 유명하다. 자강도 소재지로 도의 중부, 북천과 남천이 흘러드는 장자강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북동부는 장강군, 서부는 위원군, 시중군, 남부는 성간군과 접한다. 동서(공귀동~두흥리) 사이의 제일 긴 거리는 24km, 남북(장자동~공인동) 사이의 제일 긴 거리는 19km이다.

시의 면적은 263.667㎢로 도면적의 1.57%를 차지한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에 속했고, 발해 서경압록부의 일부 지역이었다. 고려시대인 1369년 진변, 진안, 진성, 진녕 등 4군을 설치하면서 북방의 군사요충지로 기능하였다. 조선시대인 1403년부터 강계부로 불렸다. 강계란 이름은 장자강과 북천, 남천의 사이에 있는 지역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17세기말 강계부는 11개 방을 포괄하였으며 19세기 중엽에 이르면 35개 면과 방이 있었다. 1896년 관찰부가 없어지면서 평안북도 강계군이 되었다. 해방 이전 강계시는 오늘의 만포시, 시중군, 강계시, 장강군, 전천군, 동림군 지역이 포함된 강계군으로서 평안북도에 속해 있었다. 1949년 1월 자강도가 신설되면서 자강도에 속했고, 1949년 12월에 강계군은 장강군으로 강계면은 강계시가 되었다. 이 때 강계시가 도소재지가 되었다. 1952년 12월 장강군 공인리, 공귀리, 두흥리, 향하동의 일부가 시로 넘어왔다. 1955년 2월에 시안의 리들이 동이 되었다.

조선대백과사전(평양: 백과사전출판사, 1998)에 따르면 강계시는 32개 동과 2개 리로 되어 있다. 장자동, 로동자동, 연주동,석조동, 류동, 고영 1동, 고영 2동, 연풍동, 수침동, 신문동, 남산동, 만수동, 북문동, 부창동, 충성동, 동문동, 야학동, 동부동, 남천동, 향로동, 남문동, 석현동, 강서동, 외룡동, 대응동, 서산동, 독산동, 내룡동, 홍주동, 공귀동, 공인동, 연석동, 두흥리, 인가리

자연환경

강계시의 변두리에는 랑림산맥과 강남산맥에서 갈라진 산맥들이 뻗어있다. 여기에는 민봉(1548m), 대웅산(1123m), 초대봉(1427m), 추포령(771m), 작막령(505m), 남산(539m) 등 높고 험한 산들이 있다. 시는 분리로 되어 있고, 평균높이는 300m이다.

기후는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가진다. 겨울에는 몹시 춥고, 여름에는 무더우며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하다. 연 평균기온은 5.7℃, 1월 평균기온은 -15.9℃, 7월 평균기온은 23.1℃이다. 10℃이상 적산온도는 3082℃이다.

연 평균강수량은 952mm이고 이 가운데 61.5%가 여름에 내린다. 첫서리는 10월 상순에 내리며 마감서리는 4월 하순에 내린다.

장자강과 이 강에 흘러드는 북천, 남천을 비롯한 10개의 하천들이 흐르며 모두 물살이 센 산악하천의 특성을 보인다. 산림은 강계시 넓이의 75.9%를 차지하며 주요 수종은 소나무, 잣나무, 이깔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종비나무 등 침엽수와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피나무, 가래나무 등 활엽수가 있다.

강계시에는 여러 지질시대의 바위들이 분포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은 화강암, 석회암 등이다. 지하에는 쇠돌, 석회석 등이 있다. 대부분 지역에는 산악표백산림갈색토양이 퍼져 있다. 하천연안에는 논토양과 충적지토양이 있다.

주요산업 및 특산물

강계시는 전력, 기계, 방직을 비롯한 중공업과 경공업을 망라하는 공업도시이다. 방직 및 피복공업, 일용품 공업, 전력공업, 기계공업, 식료공업 등이 기본을 이룬다. 이밖에도 제약공업, 화학공업, 건재공업 등이 발전하고 있다.

북한 전력생산의 주요기지로, 대규모 발전소와 여러개의 중소형발전소들이 있다. 기계공업은 건설기계, 정밀기계, 전기기계 및 전기기구, 공작기계, 식료기계, 방직기계, 농기계, 공규류 생산부문으로 되어 있다. 이 지방에 풍부한 산과일과 목재자원을 원료로 한 식품공업과 목재일용품공업이 알려져 있다. 특히 '강계포도술공장'과 '강계연필공장'이 유명하다.

강계연필공장: 1946년 6월 1일 세워진 공장으로 '삼천리'표 연필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연필을 생산한다. 이 공장에는 준비직장, 가공직장, 완성직장을 비롯한 기본직장들과 공무동력직장을 비롯한 보조직장 그리고 생필직장 등이 있으며, 여러 개의 독립작업반들과 기술준비실이 있다. 1968년 9월 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20주년 기념공장칭호를, 1972년 4월 8일에는 '김일성 훈장'을 받았다.

강계포도술공장: 자강도에서 많이 나는 포도를 원료로 포도술을 생산하며, 이 외에도 배술, 딸기술, 꼬냑, 인풍술 등 발효주와 브랜디를 비롯한 각종 음료를 생산한다. 이 공장에는 원료전처리직장, 포도술과 탄산포도술(샴페인)을 만드는 발효직장, 제품을 맛들이기 위한 지하저장고, 포장직장 등이 있다. 보조직장으로 공무동력직장, 실험실이 있으며, 자체 원료기지인 포도원과 진료소, 탁아소,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1956년 4월 1일 강계식료공장의 한 개 작업반이 독립하여 강계포도술 공장이 발족하였으며 1957년부터 현대적 공장에서 작업하게 되었다. 이 공장은 1965년 10월 19일 천리마공장칭호, 1968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20주년 기념칭호,1982년 4월 13일 3대혁명붉은기와 근위공장칭호, 1984년 4월 10일 26호모범기대공장칭호, 1988년 10월 5일 26호 모범기대공장영예상칭호를 받았다.

강계은행나무: 1980년 1월 천연기념물 제101호로 지정된 나무로 자강도 강계시 북문동에 소재한다. 이 나무는 북부 내륙지대의 은행나무 북한계선(북위 40°55')을 이루고 있으며 강계지방에 하나밖에 없는 은행나무라고 한다. 숫나무이며 빗자루 모양이다.

장자산 잣나무: 자강도 강계시 장자동에 있는 두 그루의 나무로 1950년 10월 10일 김정일이 직접 심었다는 이유로 천연기념물이 된 나무이다. 천연기념물 등록번호 제410호.

흥주닭: 김일성 주석이 직접 이름을 지었다고 해서 천연기념물(등록번호 제102호)이 된 닭으로 강계시 흥주동 흥주닭공장에서 기르고 있다. 거친먹이를 먹으며 추위에도 잘 견디고 겨울에도 계속 알을 낳아 1년 평균 150개의 알을 낳는다.

강계1호 사과: 1952년 삼월과 붉은칠월 사과품종을 섞붙임하여 얻은 씨앗을 1953년 강계지방에 심어 골라낸 품종이다. 추위에 강하고, 빨리 자라며 잎은 둥글고 크기는 보통정도리다. 5월 상순 연한 장미빛 꽃이 피고, 열매는 8월 초에 익는다.

강계2호 사과: 1953년 경암품종의 자연섞붙임 씨앗을 1954년 강계지방에 심어 얻어낸 품종이다. 추위에 강하며 나무가 곧추 서고, 그리 왕성하게 자라지 않는다. 5월 상순 연한 장미빛 꽃이 피고 7월 중순경 열매가 익는다.

강계1호 뽕나무: 자연씨모에서 추위에 강하고 뽕잎 소출이 높은 개체를 골라낸 품종이다. 자강도의 장강, 희천, 초산, 만포, 시중 등지에 퍼져있다. 해발 200~400m에서 재배되며, 영하 29도 이하로 내려가는 지역에서도 재배할 수 있다. 잎이 비교적 일찍 피는 중간품종이다. 다른 품종들에 비해 뽕잎 소출량이 높지만 가을에는 뽕잎의 먹이가치가 떨어진다.

교통 및 명소

강계는 북부내륙지역 교통 중심지의 하나이다. 철길로는 만포선과 이 선에서 갈라지는 강계선(강계~랑림 사이) 철도가 있다. 강계시에는 강계~화평~김형직 사이, 강계~만포 사이, 강계~희천 사이, 강계~위원~초산~우시 사이 도로가 있다.

강계시에는 장자산대학, 천리길대학, 인풍대학, 자강대학을 비롯하여 대학, 전문학교, 공장대학 등이 있다. 또한 30여개의 고등중학교, 30여개의 인민학교, 300여개의 탁아소, 유치원들이 있다. 배움의 천리길 학생소년궁전, 장자산소년단야영소 등이 있으며, 도인민병원, 산원, 고려병원, 구강병예방원, 시인민병원 등 50여개의 의료기관이 있다.

관서8경의 하나로 유명한 '인풍루'가 있으며, 조선시대에 건축된 망미정, 강계아사, 거연성, 읍성 등 고적들이 있다.

강계읍성: 북쪽에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조선시대(1436년)에 돌로 쌓은 성으로 강계시의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다. 1555년과 1739년에 고쳐 쌓았다. 성의 모양은 남북장방형이며둘레는 약 4500m이다. 성벽의 높이는 본래 4-5m였는데 지금 남아있는 부분은 약 3m이다. 4개의 성분이 있었고, 3개의 큰 못과 많은 우물이 있었다.

활쏘기 훈련을 하던 6개의 정자와 4개의 문루, 군사를 지휘하던 북장대, 서장대, 남장대, 동장대 등이 있었다. 지금은 관서8경의 하나로 일컬어져 온 서장대의 인풍루와 남장대의 망미정이 남아있다.

강계아사: 강계시 북문동에 있는 조선시대 강계부의 관청건물이다. 처음에는 강계시 고영도에 있었으나 1401년 현 위치로 옮겨왔다. 1663년 큰 규모로 지었으나 불타고, 지금의 건물은 1888년 다시 세운 것이다. 현재는 부사가 관청일을 보던 동헌과 부사가 거처하던 내헌, 그리고 관리와 군사들이 활쏘기 연습을 하던 육모정이 남아있다. 6.25전쟁 기간중 파괴된 것을 복구하여 1954년부터 강계역사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거연정: 1890년에 지은 건물로 주민들이 활쏘기를 하면서 무술을 연마하던 누정으로 강계시 남산동에 있다. 만주와 연한 강계는 이민족과 긴장상태를 유지하던 곳이라 강계 주위에는 봉화대, 보, 성들이 많고 활쏘기를 하던 사정도 많다. 거연정 역시 그 사정들 가운데 하나로 정면 3간, 측면 3간의 홑처마 합각집이다.

인풍루: 장자강(독로강)변 절벽위에 있는 누각으로 강계읍성의 서북쪽 장대(將臺)이다. 1472년 세워졌고, 1680년 개축되었다. 자연 경사를 이용 앞은 2층, 뒤는 단층으로 만들었다. 마루 위에는 바깥쪽으로 돌아가면서 15개의 약간 배부른 기둥을 돌려 세우고 그 위에 2익공식 두공을 올렸다. 세 모서리 기둥들은 다른 기둥들보다 조금 굵고 높게 하면서 안으로 약간 기울임을 주었다.

망미정: 강계시 부창동에 있는 망미정은 강계읍성의 남장대이다. 1436년 세워지고 1837년 개축되었다. 망미정은 강계읍성의 장대들 가운데 중요한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장자강가 절벽위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아름다워 망미정이라 명명되었다 한다. 7월 백중날 장자강에서 벌어지는 관등놀이의 구경터로 널리 이용되었다고 한다.
작성일:2013-10-04 16:04:22 203.255.111.242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함께하는 협력사
통일부
NIS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대한민국 국방부
외교부
이북5도위원회
사단법인 북한전략센터
  • 제호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 대표전화 : (02)724-6650,6523
  • E-mail : nkchosun@chosun.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해범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kchosun@chosun.com
ND소프트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