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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군(長江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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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조선
등록일
2013-10-04 15:40:48
조회수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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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강도의 북부에 위치한 군으로, 북쪽으로는 만포시, 자성군, 동부는 화평군, 랑림군, 남부는 성간군, 서부는 강계시 및 시중군과 서로 접한다. 해방 전까지 평안북도 강계군에 속하였다가 해방 이후 1949년 1월 행정구역 개편으로 자강도가 신설되면서 장강군이 새로 생겼다.

행정구역은 1개읍(장강읍)과 13개의 리 및 노동자구(종포리 신성리 명신리 장평리 혁신리 무덕리 성장리 원평리 향하리 장항리 오일노동자구 랑림노동자구 승방로동자구)로 구성되어 있다. 군 소재지는 장강이다.

자연환경

장강군은 강남산맥, 백삼봉산맥, 랑림산맥 등에 의하여 거의 둘러 싸여 있다. 여기에는 사랑봉(1787m), 황수령(1470m), 직고개(1058m), 사덕산 등의 높은 산들이 있다. 북천과 종성강의 하류지역인 장평지구에는 자강도에서 큰 평야의 하나인 장평벌(약 300정보)이 펄쳐져 있다. 연 평균기온은 6.2℃, 1월 평균기온은 -15℃, 7월 평균기온은 1℃이며, 연 평균강수량은 952mm이다. 북천, 남천을 비롯한 비교적 큰 강하천들도 6개나 된다.

산림 넓이는 장강군 넓이의 89.5%를 차지한다. 산에는 주로 참나무, 소나무, 피나무, 가문비나무, 분비나무, 전나무, 사스레나무, 봇나무 등이 있다. 군에는 주로 편마암류들과 화강암류, 석회암, 점판암 등이 분포되어 있다. 땅속에는 흑연, 아연, 연, 안티몬, 중석, 몰리브덴, 형석, 석탄 등이 묻혀 있다. 장강군의 대부분 지역엔는 산림갈색토양이 분포되어 있으며 산악표백화산림갈색토양, 충적지토양, 논토양도 일부 있다.

주요산업 및 특산물

산간농촌지역으로 특징적인 산업은 없다. 경작지는 군넓이의 5.7%이며 그 중 논은 13.7%, 밭은 74.8%, 과일밭은 3.2%, 뽕밭은 7.8%이다. 주로 논벼, 강냉이, 콩, 감자를 경작한다. 과일중에는 포도가 41%를 차지한다. 소, 양, 돼지, 닭 등의 집짐승과 꿀벌도 많이 기른다.

오수덕잣나무림(천연기념물 등록번호 제114호): 자강도 중강군 오수리에 소재하고 있다. 잣나무림은 해발 600~700m되는 남쪽비탈면에 퍼져있고 그 면적은 44.8정보이며 단순림으로서 그 축적량은 약 5240㎥이다. 오수덕잣나무림이 퍼져있는 토양은 현무암지대에 생신 산림밤색토양이고 기계적 조성은 모레메흙이며 약간 습한 편이다. 이 지대의 년평균 기온은 4.1℃이고 10℃ 적산온도는 2874℃이며, 년평균 강수량은 824.3mm이다. 나무는 1920년경에 심은것이다. 나무의 평균 높이는 30m이고 뿌리목둘레는 2m이며 가슴높이 둘제는 1.5m이다. 잣이 해마다 많이 열린다.

교통 및 명소

군의 남부로는 강계~랑림 사이 철도(협궤철도)가 지나간다. 군의 가운데로는 강계~장강~중강 사이, 만포, 랑림으로 가는 도로가 있다.

사덕산: 장강군과 화평군의 경계에 있는 높이 1355m의 산이다. 산마루에는 넓은 덕이 있다. 이 산의 동쪽 부분을 하사덕, 서쪽부분을 상사덕, 가운데 부분을 중사덕이라고 부른다. 현무암으로 덮인 덕의 주변에 시생대의 흑운모편암, 차돌, 편마상규암, 변질대리암 등이 분포되어 있으며 여기에 비금속광물들이 묻혀 있다.

향하혁명사적지: 자강도 강계에서 동쪽으로 약 10㎞ 떨어진 향하혁명사적지는 6.25전쟁중 국군과 유엔군의 공세에 밀려 북으로 올라갔다가 중국 인민지원군의 개입으로 한숨 돌린 김일성 주석이 1950년 12월 20일부터 26일까지 머물면서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3차 전원회의, 정치위원회, 제48차 조직위원회 등을 준비하고 개최했던 곳으로 북한은 이곳을 혁명사적지로 지정하고 있다. 김 주석은 1950년 12월 21일부터 23일까지 열린 제3차 전원회의에서 '현정세와 당면과업'이라는 보고를 통해 전쟁 직후 6개월 동안의 사업을 결산했으며 ▲당·국가·군대 내에서 혁명적 규율을 강화하고 ▲군사활동에서 교조주의를 반대, 주체를 확립하며 ▲후방을 공고히 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 회의에서 연안파의 거두 무정(본명 金武亭)이 불법살인, 명령불복종 혐의로 숙청되었다. 김 주석은 전쟁이 끝난 후 1961년 5월과 1969년 7월 이곳을 찾아 전쟁시기의 사적물을 둘러보았다고 한다.


무정(武亭, 1905-1951, 본명: 金武亭)

함북 경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 중퇴하고 중국으로 망명 1924년에 보정군관학교 포병과에 입학했다. 졸업후 중국 국민당 군대에서 포병장교로 활동했다. 1925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했고, 1927년 4월 장개석 반공쿠데타 이후 상하이(上海)로 도피 지하활동을 전개하였다.

1934년부터 전개된 대장정에 참여했다. 1937년 노농홍군(勞農紅軍)이 국민혁명군 제8로군으로 개칭될때 팔로군 총사령부 작전과장에 임명되었다. 1938년 팔로군 포병연대장, 1941년 화북(華北)조선청년연합회 회장, 1942년 7월 화북조선독립동맹 중앙집행위원 겸 윤함구(淪陷區, 적 점령지) 공작위원회 부장, 11월 화북조선청년혁명학교 교장직을 수행했으며, 해방 당시 조선의용군 사령관 겸 독립동맹 집행위원이었다. 1945년 12월 개인 자격으로 귀국,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밍위원회 중앙위원, 7월 보안간부훈련대대부 포병담담 부사령관, 1948년 3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을 지냈다.

1950년 6.25전쟁 초기 제2군단장으로 참전했고, 9월 조선인민군 후퇴때 수도(평양)방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12월 만포 별오리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정기대회에서 불법살인, 명령불복종 혐의로 숙청되었다. 1951년 6월 무렵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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