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그동안 시기를 저울질하거나 미뤄왔던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대북 식량지원과 대한적십자사(한적)를 통한 쌀 지원을 전격 재개키로 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WFP를 통해 옥수수 5만t과 식용유 1천t, 분유 1천t 등 모두 5만2천t을 북한에 지원하기로 입장을 정리하는 한편 지난해 수해 복구를 도우려고 제공하다 핵실험으로 보류한 쌀 1만500t의 북송작업도 조만간 재개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WFP.한적 통한 지원은= WFP를 통한 지원은 2001~2004년 매년 이뤄진 사업이지만 2005~2006년 2년간 건너 뛴 만큼 ‘계속 사업’에 속하며 한적을 통한 쌀 지원은 작년 7월 북한 수해를 돕기 위한 ‘일회성 사업’이다.

이 가운데 WFP를 통한 지원은 1996년 곡물 3천409t으로 시작된 뒤 1999~2000년에 거른 뒤 2001~2004년에는 매년 옥수수 10만t을 지원했으며 금액은 1천725만달러, 1천739만달러, 1천619만달러, 2천400만달러 등이었다.

2005년에 지원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북한이 국제기구에 대해 지원형태를 개발지원 방식으로 바꾸고 북한내 상주인원을 축소 내지 철수시켜 달라고 요구하면서 WFP의 식량지원 활동이 불투명해진 상황을 감안한 것이다.

WFP를 통한 우회 지원은 지난해 정부가 약속해 놓고도 같은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해 전면 보류됐고 쌀 지원은 애초 10만t 가운데 대부분이 지원되고 북한의 핵실험 직후 1만500t이 남은 상태였다.

다만 쌀의 경우 지난 3월 22일 시멘트와 중장비 등 다른 잔여 물품과 함께 4~5월 북송을 마치겠다고 정부가 발표한 뒤 나머지 품목들은 대부분 수송을 끝냈는데도 불구하고 쌀만 한 톨도 북송이 이뤄지지 않았었다.

◇왜 전격 재개하나 = 이번에 정부가 이들 두 가지 지원을 동시에 재개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모두 순수한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재개 배경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들 사업이 지체된 배경이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자금의 송금 문제로 2.13합의가 이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 많은 점에 비춰 최근 BDA 상황과 연결시켜 보는 분석이 적지 않아 보인다.

이는 BDA 문제가 해결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만큼 정부가 최우선으로 고려했던 국내외 여론이 대북 지원을 수긍하는 쪽으로 흐를 것을 기대한 게 아니냐는 분석인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그러나 쌀 잔여분 지원을 결정한 배경에 대해 “BDA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 때문에 2.13합의의 초기조치가 이행되지 않으면서 대북 쌀 차관 북송 시기에 대한 합의를 우리측이 지키지 못하면서 우선 WFP를 통한 식량이나 남은 쌀을 보내기로 결정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일 끝난 제21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북측이 쌀 차관 합의 이행을 촉구하자 우리측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쌍방이 함께 방법을 찾자”고 제안한 대목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당시 통일부는 구체적 내용에 대해 함구했지만 쌍방이 찾은 방법으로 WFP와 수해복구용 쌀이 거론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측은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을 감안할 때 급한대로 쌀 차관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
이 때문에 이미 장관급회담 당시에 이들 사업의 재개를 놓고 남북이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WFP를 통한 식량지원의 경우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 감소로 북한내 식량창고가 바닥난 WFP가 지난해부터 계속 요구해온 점을 감안해 이뤄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정부가 2.13합의의 이행이 지체되면서 합의해놓고도 지원을 보류하고 있는 대북 쌀 차관 40만t의 제공으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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