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정.군 간부들이 2005년 8월 15일 광복 60돌을 맞아 대성산혁명열사릉(위)과 애국열사릉(아래)에 헌화했다./연합자료사사진

국내 노동단체 방북단 일부가 지난 5월 북한의 혁명열사릉을 참관하고 관계 당국이 이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벌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른바 남북 간 ‘참관지 자유방문’ 문제에 대한 논란이 본격화될 지 주목된다.

남북 노동절 공동행사에 참가한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 방북단 150여명 가운데 50명 가량이 지난 5월 1일 평양 혁명열사릉을 참관, 이 중 4명이 헌화한 내용이 드러나면서 국가정보원 등 공안당국이 국가보안법 적용 가능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에 대해 통일부가 지난 달 5일 노동절 공동행사에 지원하려던 남북협력기금 규모를 30% 가량 삭감하고 주도적으로 참배한 4명 등에 대해 1개월 방북 정지 조치를 취했지만 사법처리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를 경우 논란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정부가 당시 상황을 확인하고도 2개월 만에 관련 조치를 취한데다 문제의 성격을 도외시한 채 참관자 비율에 맞춰 30%를 계량적으로 깎은 채 협력기금을 지원했다는 점도 또다른 논란거리가 될 공산이 크다.

◇ 북 참관 요구와 정부 입장 = 이번 사안은 북측이 작년 12월 제17차 남북장관급회담을 시작으로 지난 달 11∼13일 제19차 회담에 이르기까지 장관급회담의 핵심 의제로 계속 제기한 참관지 제한의 철폐 문제와 연결돼 있다.
이는 상대측 지역을 방문하는 자기측 인원에 대해 참관지 자유방문을 허용하라는 것이다.
북측은 특히 지난 달 12일 장관급회담 전체회의에서 상대방의 체제와 존엄을 상징하는 성지(聖地)와 명소, 참관지들을 제한없이 방문토록 할 것을 주장하면서 평양에서 열리는 8.15 평양통일대축전 때 ‘남측 대표단’의 성지 방문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해 8.15 행사 참석차 서울을 방문한 북측 당국.민간 대표단이 우리측이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국립현충원에 참배한 것에 대한 우리측의 상응조치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북측은 지난 6월 광주에서 열린 6.15행사 때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기도 했다.
현재 정부가 방문을 주로 제한하고 있는 참관지는 대성산 혁명열사릉과 신미리 애국열사릉,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등 3곳 정도로, 과거에 비해서는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체제의 상징성을 따지면 금수산기념궁전, 혁명열사릉, 애국열사릉 순으로 중요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그동안 방북교육을 할 때 이들 장소를 방문하지 말 것을 당부해온 것은 상황에 따라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혐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열사릉 참관 상황과 정부의 제지 = 방북단은 4월 30일 평양에 도착한 직후 체류일정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북측으로부터 혁명열사릉 방문을 제의받았으며 방북단 내부적으로 이에 대한 토론이 장시간 벌어진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다음 날인 5월 1일 이동 중에 버스가 혁명열사릉으로 방향을 틀자 동행한 수 명의 당국자들은 “참관하면 안 된다”며 반대했지만 버스는 혁명열사릉 내로 들어갔다. 당국자들은 전날 논의가 있기는 했지만 실제 혁명열사릉으로 가게 되는 상황은 버스가 이동하는 중에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노동단체 관계자들이 하차하자 당국자들은 “참배는 안 된다”며 “책임이 뒤따를 것”이라고 강력하게 제지하고 나섰다는 게 통일부 측 설명이다.

150명 가운데 참배단에 대열을 갖춘 인원은 주도적 참배자로 분류되는 헌화자 4명을 포함해 50명이며 주로 민주노총 측 참석자였던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먼 산을 바라보는 등 딴 곳을 쳐다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게 통일부 당국자의 전언이다.

◇ 법적 검토가 이념논쟁 불러올까 = 통일부가 방북 목적을 벗어난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남북교류협력법을 통해 주도적 참배자 4명을 포함, 14명에 대해 한 달 간 방북을 금지하는 일종의 행정조치를 취했지만 형사적으로는 아직 최종적인 판단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국가정보원은 이와 관련, 이들이 돌아온 직후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관계당국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에 시간이 걸렸다고는 하지만 상황을 인지한 지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법률적 검토가 미처 끝나지 않았다는 점은 곤혹스러운 정부의 입장을 반증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참관지 제한 문제가 이슈로 부각되고 결과적으로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로까지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 가 내부적으로 다시 한 번 이념적으로 몸살을 앓을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참관 자체만으로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해석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더욱이 5월 열차 시험운행 무산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남북관계 상황도 정부에 부담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례를 보면 2001년 8.15 행사 때 방북했던 강정구 당시 동국대 교수가 김 주석 생가인 만경대에서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고 쓰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적이 있다.

하지만 작년 8월에는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가 애국열사릉 방명록에 서명하면서 잠시 논란이 됐다가 그냥 넘어간 사례도 있다.

이번에는 혁명열사릉을 집단으로 방문했다는 점에서 사안의 경중이 다르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관계당국의 법률적 검토는 일단 주도적 참배자 4명에게 초점이 모아지고 있어 보인다.

북측의 제안에 이어 혁명열사릉까지 가게 된 경위, 참배 상황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겠지만 노동단체측은 의도적으로 참관한 게 아니라 정해진 코스를 따라 이동하다가 ‘우발적’으로 가게 됐다는 입장을 펴고 있어서 ‘범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특히 이 4명에게 국보법상 찬양고무죄 적용 여부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참배했는지 여부가 잣대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다만 동행한 당국자들이 평양 현지에서 수 차례 만류했는데도 불구하고 참배를 강행한 상황이 명백하게 입증될 경우 참배자들에게는 불리한 정황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노동단체 쪽에서는 “정부측 관계자들이 혁명열사릉 참관 당시 노동계 지도부측에 참관 중단 요청을 정식으로 한 적이 없다”고 주장, 양측의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이어서 관계당국이 어떤 법률적 검토결과를 내놓을지 주목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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