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두만강 물은 많이 불어 있었다.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투먼(圖們)에서 싼허(三合) 쪽으로 40분쯤 달렸을까. 기자가 세를 낸 택시의 중국인 운전사가 말했다.

“지난겨울에 이 근처 마을의 경운기를 북한사람들이 와서 훔쳐갔다고들 해. 좁은 곳은 강폭이 5m밖에 안 되기 때문에 얼어붙으면 훔쳐가는 건 일도 아니지. 북한 군인들은 총 들고 약탈까지 하고. 먹을 것도 없으면서 핵폭탄은….”

28일 오후 2시쯤 북한 남양시의 접경지대인 중국 투먼시 해관(海關·세관) 부근. 두만강변을 따라 난 2㎞가량의 도로는 노점상과 한국·중국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북한 건물을 바라보던 중국 단체관광객들은 “야 정말 가난하네. 봐, 건물에 유리창이 하나도 없잖아”라며 수군거렸다. 여기저기서 ‘핀충(貧窮·가난하다는 뜻)~’ 하는 소리가 들렸다.

두만강 국경도시 훈춘(琿春)에서 만난 한 탈북자지원 NGO단체 관계자는 “두만강 유역에 사는 중국인들에게 북한은 귀찮은 이웃, 가난 때문에 손 벌리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경멸의 대상이 된 지 오래”라고 했다.

과거엔 탈북자들이 문을 두드리면 가엾다며 먹을 것을 내놓기도 했지만, 요즘엔 당국에 신고하거나 돈을 받고 인신매매범에게 팔아넘기기 일쑤라는 것이다.

‘귀찮은 이웃, 북한’을 경계하기 때문일까. 중국측 국경경비가 최근 부쩍 강화됐다. 그 이유를 놓고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우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엔 탈북자 문제가 골칫거리다. 또 최근 북한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중국 인민해방군 병력 2000명이 증파됐다는 외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북한 나진과 접경인 훈춘의 취안허(圈河) 해관을 연결하는 다리 부근엔 최근 새 군부대 막사가 세워졌다. 기자가 지난 4월 이곳에 왔을 때는 없던 시설이다. 현지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군은 상륙정까지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투먼의 폐공장이 군부대 막사로 바뀌기도 했다고 현지의 한국인들이 전했다. 투먼·훈춘 지역에서 5년째 사업을 하고 있는 A씨는 “최근 군부대 차량의 통행이 늘었다”며 “재작년 말부터 두만강과 압록강 접경에 증강 배치되면서 북한과의 국경에 깔린 인민해방군이 14만7000명이라는 얘기까지 있다”고 말했다.

투먼의 두만강 국경도로 초입에 세워진 경찰 검문소도 새것인데, 이 도로를 지나는 택시들은 여기서 검문을 받아야 한다는 팻말이 붙어있다. 관광지가 된 투먼 해관을 뺀 거의 모든 관공서 건물 주변에선 사진촬영도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탈북자의 수도 최근 상당히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A씨는 “옌볜변방지대구류심사소(탈북자수용소)도 한산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중국이 이 지역에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것은 단둥(丹東)이나 지안(集安) 등 압록강 쪽에 비해 두만강은 강폭이 좁아 탈북자들의 주요 통로로 활용돼 온 탓이다. 또 지난해부터 야간에 국경을 넘은 북한 국경경비대가 저지르는 약탈사건도 잇따르고 있다. 이런 이유뿐만이 아니라는 관측도 있다.

‘북한정권 붕괴 대비 시나리오’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반면 두만강 유역의 해관들에서 이뤄지는 중국·북한 간 변경무역은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북한측이 나진·선봉으로 입국하는 중국 무역상들이 주로 이용하던 숙소를 폐쇄하고 신분 검사를 좀 더 까다롭게 하는 등 입국심사를 강화한 것도 미사일 사태 이전의 일이라고 훈춘에서 만난 무역상 K씨는 말했다.

난핑(南坪) 해관에선 북한의 무산철광에서 채굴된 철광석을 실은 트럭이 하루 줄잡아 100대쯤 오가고, 싼허, 카이산툰(開山屯) 등지에서도 석유나 생필품, 광석 등을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통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북한의 철광석 1t은 180달러쯤 쳐준다. 현금장사다. 북한 보따리상들에겐 요즘 개고기 장사가 인기다. 중국상인에게 개 1마리를 팔면 열 배쯤 남는다고 한다.

이날 오후 5시쯤 카이산툰 해관 앞마당에 북한 상인 두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중국이 (미사일 문제로) 우리에게 서운하게 대한 것은 다 미국 때문”이라고 하자, 다른 사람이 “그래도 우리가 버티니까 중국이 이 정도 사는 것이지. 그걸 중국이 아는데 우리한테 막 대할 수 있겠어?”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들은 기자에게 “거 남조선에서는 3~4년 후에 (미군) 뒤로 빼고, 이대로 가면 미군 철수하겠지? 그럼 함께 잘 살아보는 거야. 내 말이 맞아 안 맞아”라고 물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보다 피곤함과 곤궁함이 더 뚜렷해 보였다./훈춘·투먼=이명진특파원 mj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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