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고 있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한을 제외한 8자회동이 성사될 것이 확실시되면서 쿠알라룸푸르가 대북 압박의 또 다른 무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안 채택 이후 처음으로 북핵 6자회담 당사국의 고위 외교 당국자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ARF가 북한 미사일 발사 사태 해결의 계기가 될 수 있을 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사라져가는 분위기다.

북한을 제외한 북핵 6자회담 참가국과 캐나다와 호주, 그리고 ARF 주최국 말레이시아가 8자회동에 합의한 것은 북한이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6자회담이 되려면 미국이 금융제재를 풀면 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이 같은 반응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유엔 결의안 채택 이후 이렇다 할 상황 변화가 없는 가운데 북한이 미국에 대한 '굴복'으로 비칠 수 있는 6자회동에 쉽게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6자회담 불참' 의사를 밝힌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북한을 제외한 8자회동이 합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는 기내에서 "6자회담 재개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도 북한의 입장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다만 북한 백남순 외무상을 수행하고 있는 정성일 북한 외무성 국제기구국 부국장이 공항에서 6자회동을 거부하면서도 "계속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점이 여운으로 남지만 미국과 북한의 태도가 워낙 강경한 것으로 전해져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북한이 6자회동을 거부하면서 성사된 8자회동에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 수위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유엔 대북 결의안에 찬성한 중국이 북한을 고립시키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는 8자회동에 동의한 점도 북한을 더욱 코너로 몰아붙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북한이 단기간에 먼저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북한이 중국의 적극적인 설득에도 불구하고 미사일을 발사하고 절박한 쌀과 비료를 희생하며 우리나라를 상대로 이산가족 상봉행사 중단을 선언하는 등 잇단 초강수를 두고 있는 점에 비춰 북한이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쉽게 고개를 숙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해법 도출 과정이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도 서서히 힘을 얻고 있다.

결국 '한반도의 긴장감을 높여서는 안된다'며 안보리 결의를 벗어나는 대북 제재에 반대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입지가 더 좁아질 수 있으며 그만큼 더 바빠질 개연성이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이 조만간 협상 테이블에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위기도 없지는 않다. 나온다면 우리 정부의 쌀과 비료 지원 유보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이 과거 7월 말까지 쌀을 지원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요청할 정도로 식량난이 심각한데다 이번 집중호우로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그동안 압박국면에서는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면서 "이번 ARF가 아무 성과없이 끝난다면 북한을 당분간 내버려 둬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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