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사태 ’균형추 역할’
中 ’대북 영향력’ 유지도 관건


“미사일 위기국면을 외교적으로 푸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뜻을 모았다는게 중요하다.”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과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간 26일 오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회동의 의미를 외교부 당국자는 이렇게 요약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유엔 대북 결의안 채택으로 고조된 한반도 긴장국면을 풀어나가자면 ’강경대응’이 되풀이되는 악순환보다는 상황을 연착륙시키는 지혜를 발휘하는 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라는 유용한 외교공간이 펼쳐진 상황에서 ’중재자적 역할’을 해온 한국과 중국이 다른 양자회동에 앞서 뜻을 모은 모습을 과시하는 것은 다른 관련국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은 것으로 현지 외교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대북 강경 드라이브 속에서 자칫 모멘텀을 잃기 쉬운 6자회담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 때문에 반 장관이 쿠알라룸푸르에서 다른 누구보다 리 부장을 먼저 만나 ’외교적 해법’에 뜻을 모은 것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등 한국의 수뇌부가 나서 강경 제재 국면으로 흐르려는 국제정세의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북한의 태도 전환을 많이 언급하고 있지만 그러자면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레버리지(수단)가 있는 한국과 중국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상황”이라면서 “양국이 뜻을 모았다는 것은 현 사태의 연착륙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북한에 대한 추가적인 경제제재나 확산방지구상(PSI) 등을 미국과 일본이 추진한다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지만 북한을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수단을 갖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이며, 그런 점에서 양국의 회동은 균형추를 잡는 상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까지 나서 ’미사일을 발사하지 말라’고 권고했음에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상황에서 불쾌해진 중국 수뇌부지만 미·일이 주도하는 동아시아의 질서를 누구보다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의 외면’에 화가 난 중국 수뇌부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과정에서 ’수정안’을 제시하는 등 예상치 못한 적극성을 발휘하는 모습으로 대응했다.

북한에 상당한 압박을 가하게될 안보리 결의안이 전격적으로 통과된 것은 중국의 찬성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외교 소식통들은 “안보리 결의안 채택 과정을 보면 최근 중국과 북한 관계의 변화상을 엿볼 수 있다”면서 “특히 혈맹관계에 대한 강한 집념이 없는 중국 제4세대 지도부의 북한 인식이 어느 수준인지 가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북한이 ’추가적인 도발’을 할 경우 후진타오(胡錦濤)를 주축으로 한 현 중국 지도부가 북한 압박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 수준에서 중국은 여전히 ’북한 설득’에 무게중심으로 두고 있다.

이날 반 장관과의 공식 회담에 들어가기전 리 부장이 “북한이 6자에 나오는게 북한에도 좋고 한반도 정세에도 좋다”고 말한 것은 북한이 선호하는 방식에 중국이 동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이 소외된 5자회담은 ’불가’라는 입장을 견지하고있다.

이날 회동에서 한중 외교장관은 5자회담 대신 ARF에 참가하는 다른 나라들이 적절히 섞인 다른 형식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6자회담 참가국과 말레이시아 등 주요 나라들이 함께 하는 8자회의 등이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미사일 사태에 관심이 많은 나라들이 모여 국면전환을 위해 한목소리를 낼 경우 중국도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목소리를 담는 형식을 놓고 ’성명’이나 ’요약’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 외교장관은 앞으로 ’북한과 미국’이라는 핵심 당사국을 상대로 ’결단을 촉구하는’ 행보를 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결단의 의미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주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고 설명했다.

북미 양자회담은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미국의 의지가 확고한 만큼 가급적 북한측의 태도변화를 촉구하는 노력이 집중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물론 북한이 이런 외교적 노력을 거부할 경우 보다 강한 톤이 담긴 메시지가 ’의장성명’ 등의 형식으로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

이 당국자는 “외교현장의 다이너미즘(역동성)을 감안할 때 최소한 북한이 과거와 달리 ’적극성’을 발휘하려는 의지만이라도 보여준다면 예상보다 큰 변화를 유도하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면서 “북한도 이 시점에서 냉철한 계산법을 동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