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5일 ‘북한 미사일 문제에 있어 미국이 제일 많이 실패했다’는 이종석(李鍾奭) 통일부장관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나선 것은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주변정세에 관한 인식과 의중을 우회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해 ’옳다, 그르다’고 직접적인 논평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장관의 발언을 둘러싼 국회 논란을 화두로 삼아 “한국 장관이 ’미국 정책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하면 안되느냐”며 국회의 추궁에 대해 장관들의 당당한 답변을 주문하는 어법으로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피력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안 통과 이후 추가적인 대북 금융제재 조치 등 강경책으로 현 상황을 타개하려는 미국과 일본의 강경 드라이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노 대통령의 발언에 묻어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미국과는 항상 발걸음을 같이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한미 견해가 똑같을 수 없다는 점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미국만 항상 옳고, 100%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 미사일 발사가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는 인식의 토대 위에서 이번 사태를 외교적 노력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정부의 대응기조를 다시 한번 천명함으로써 대북 강경론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대북선제공격론 등을 주창한 일본에 대해서는 직설적으로 비판을 가했지만, 미국에 대해선 말을 아껴온 노 대통령이 ‘간접화법’으로 할 말을 하고 나선 것은 그만큼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엄중하다는 현실 인식의 발로로 보여진다.

노 대통령이 이날 언론에 공개된 국무회의 석상에서 작심하고 언급한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이 미리 준비해온 발언을 말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는 무엇보다 단계별 대북 제재조치를 구체화하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미국의 강경무드에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 미사일 발사 후 일본과 함께 안보리 대북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데 이어 클린턴 행정부 때의 대북 경제제재 복원 검토, 한국에 대한 PSI(확산방지구상) 참여 확대 요구 등 대북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미국 의회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대상에서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문제를 제외시킬 것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북한문제를 정치적, 외교적 해법으로 풀어보려는 한국 정부의 노력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종석 장관의 발언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회에서 비난을 받는 등 국내 여론도 대북 강경론으로 흐를 조짐을 보이자, 노 대통령으로선 이에 제동을 거는 차원에서 북한 미사일 사태에 관한 상황인식을 보다 선명하게 밝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연장선에서 노 대통령이 이날 “’그러면 북한 목조르기라도 하자는 말이냐’ ’미국은 일체 오류가 없는 국가라고 생각하느냐’ ’미국의 오류에 대해서는 한국은 일체 말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되받아 질문하라”라고 국무위원들에 당부한 것도 미국과 국내 강경론을 겨냥한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19일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상황의 실체를 넘어 과도하게 대응해 불필요한 긴장과 대결국면을 조성하는 일각의 움직임들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미국, 일본 일각의 강경 대응을 경계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사퇴 및 쇄신요구가 제기되고 있는 이종석 장관을 비롯한 현 외교안보 라인에 변함없는 신뢰를 표명함으로써 힘을 실어준 것이란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다만 노 대통령이 이런 언급을 제3자인 장관들에게 “정중하되 당당하게 국회에서 답변하라”라고 주문하는 형식을 취한 것은 관련국들과의 외교적 마찰 소지를 최대한 줄여보려는 의도로 읽혀진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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