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강공 드라이브로 한·미 외교적 조율 쉽지 않을 듯
중, 대북 제재 가세하면 한, 묘한 상황에 직면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20일(현지시간)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던진 “대북 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시작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중국을 겨냥한 화두지만 한국에 대한 우회적인 메시지도 내재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추가제제에 관해 “미국이 한다고 다 국제사회의 대의에 맞느냐는 따져봐야 한다”고 발언한 터여서 그의 발언은 더더욱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힐의 메시지는= 일단 북한의 협상의지를 다시 테스트하는 의미에서 대북 추가 압박카드를 구사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정부 당국자들은 보고 있다.

“국제사회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북한을 다루는데는 외교적, 경제적 압박이 효과적일 것으로 본다”는 발언에서 미국의 시각을 가감없이 느낄 수 있다.

여기에 힐 차관보는 “북한이 외교노력을 계속 거부할 경우 경제 조치 등 추가 압박이 있을 것”이라고 미국의 향후 행보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결의안에 의한 수많은 제재 옵션을 갖고 있다”고 경고했다. 벌써부터 미국은 클린턴 정부 시절 완화했던 경제제재를 다시 복원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데 이어 PSI(확산방지구상)에 의한 북한 압박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또 이미 진행하고 있는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자료 분석 작업을 가속화해 북한을 결정적으로 코너에 몰기 위한 발걸음도 재촉하고 있다.

대북 제재에 진작부터 앞장서온 일본도 미국에 적극 가세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발언 가운데 주목해야 할 대목은 역시 ‘대북 정책의 변화’를 촉구한 부분이다.

힐 차관보는 미국이 단독으로 취한 대북 금융제재의 성공도를 “북한의 ‘비명크기’로만 측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면서 “미국 혼자선 할 수 없으며, 대북 지렛대가 더 크고 북한과 금융 및 물자 관계가 있는 중국, 일본 파트너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방점은 중국에 찍혔다. 그는 중국에 대해 “기존의 대북관계를 그대로 가져갈 것인지, 아니면 우리 모두가 요구하는 변화를 하도록 북한에게 강요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내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를 앞두고 일각에서 거론되는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의 성사 여부가 중국의 참여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이제 북한 우선 정책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와 함께 하자’는 뜻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중국 지도부는 미사일 발사를 자제해달라는 자신들의 당부를 무시하고 미사일을 발사한 데다 평양까지 찾아가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한 외교적 노력을 외면한 북한에 대해 섭섭한 감정이 적지 않은 터다.

따라서 힐 차관보의 발언은 묘하게 연출되는 ’북중간 균열’을 감지한 순발력있는 외교공세로 해석되고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한국에 던진 그의 의중이다.

힐 차관보는 한국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대북 압박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미국은 나름대로 입장을 한국 당국에 전해야 하지만 결론은 한국 사람들이 스스로 내도록 간섭하지 말고 놔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미사일 발사 이전부터 노정돼온 한미간 묘한 입장차이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것으로 서울의 외교소식통은 분석하고 있다.

한 소식통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대북 강경 드라이브에 제동을 거는 한국에 대한 불쾌감과 함께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마지못해 인정하는 감정이 복합적으로 결합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어찌보면 ’한국에 대해서든 더이상 기대하지 않는다’는 체념섞인 말로도 들린다.

게다가 그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목표가 북한의 정권행태 변화(regime behavior change)라고 한 것은 남북관계의 흐름을 유지하려는 한국 정부와 확실하게 맥을 달리는 대목이다.

힐 차관보는 청문회의 다른 대목에서 “북한이 어떤 종류의 압력에도 저항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다른 접근법, 즉 북한과 더 가깝게 지내고 인내심을 많이 보이는 것도 역시 작동하지 않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서울과 베이징의 반응= 외교부와 통일부 관계자들은 힐 차관보의 발언에 대해 “미국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내용”이라거나 “향후 미국의 행보를 잘 알 수 있었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대북 추가 압박을 분명히 한데에 대해서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감안할 때 한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과 “미국의 입장도 있지만 남북관계를 우리의 전략에 따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견으로 다소 편차를 보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공히 미국의 강경 드라이브로 인해 한미간의 외교적 조율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데는 한 목소리를 냈다.

한 당국자는 “미국이 대북 압박의 강도를 높이면 높일 수록 한반도 정세는 긴장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한반도에 사는 한국입장에서 그에 대해 고민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반응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북한에 두차례나 외면당한 중국이 그에 따른 변화의 일환으로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찬성했지만 추가로 북한을 고립으로 몰고 가는 조치에 동의할 지는 미지수다.

현지 소식통은 “중국 당국은 북한에 대해 ’더이상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거부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추가제재에 가담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21일 저녁 전화통화를 가져 눈길을 끌었다.

양 정상은 한 목소리로 북한 미사일 발사로 조성된 긴장국면으로 풀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기로 하고 역내 긴장 완화를 위해 협력키로 했다.

특히 노 대통령이 이날 통화에서 ’현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고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해 제반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관련국들이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 대목이 주목됐다.

듣기에 따라서는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하는 북한의 결단 뿐 아니라 북한을 압박하는데 주력하는 미국과 일본의 자세 전환도 촉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외교당국자들은 “특정 국가를 겨냥한 발언이 아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외교적 수사에 담긴 함의는 ’해명’으로 단순화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분위기이다.

또 후 주석도 한중 양국이 긴밀한 협의를 통해 당면한 상황을 잘 관리해나가면서, 특히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다양한 방법의 접촉과 회동을 진지하게 검토해 나갈 것을 제의했다.

따라서 내주 열리는 ARF에서 만날 것으로 보이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간 회동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만일 중국이 미국의 강권에 의해 대북 제재에 가세할 경우 한국의 입장이 묘해지게 될 수도 있다.

이 소식통은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중국이 미국쪽에 붙는다면 한국이 북한과는 성격이 다른 고립을 느낄 수도 있다”면서 “미사일 위기국면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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