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9일 인도적으로 진행해 온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중단을 선언하면서 남북관계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미사일 발사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결의안이 채택되는 등 본격화된 국제사회의 압박에 북한이 사실상 처음 행동으로 대응한 것으로, 폭발력을 지닌 이산가족 문제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에도 적지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일단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북한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는 한편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이 있을 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정부, 당혹 속 파장 촉각 = 정부는 일단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중단을 선언한 배경이 우리 정부가 미사일 발사 이후 쌀과 비료 등 대북지원을 유보하기로 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남측이 인도적 문제의 성격이 짙은 쌀.비료 지원을 유보했으니 북측도 인도적 문제인 이산가족 상봉을 중단하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는 해석이다.

실제 장재언 북한 적십자사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19일 한완상 대한 적십자사 총재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귀측이 동족사이의 인도적 문제까지도 불순한 목적에 악용하여 외세에 팔아먹은 조건에서 북남사이에는 인도적 문제라는 것이 사실상 존재를 마치게 됐다”고 밝혀 이번 조치가 남측의 쌀.비료 제공 유보와 관련돼 있음을 분명히 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 11∼13일 부산에서 열린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도 북측 대표단의 지속적인 쌀 차관 제공 요구에 미사일 발사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 한 지원을 재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당시 북측은 일정보다 하루 빨리 평양으로 돌아가면서 배포한 성명서에서 이 같은 남측의 조치에 대해 “파국적 후과가 발생하게 만든데 대해 민족 앞에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느니 “이번 회담을 무산시킨 남측의 처사를 엄정하게 계산할 것”이라고 밝혀 후속 조치가 있을 것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통일부 당국자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한 것도 당시 북측 성명을 감안할 때 이산가족 상봉 중단을 남측 정부를 압박하는 카드로 꺼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곤혹스런 정부 =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해도 정부로서는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중단의 배경이 우리 정부의 쌀.비료 제공 유보에 있다는 점에서 자칫 비난의 화살이 우리 정부를 향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지극히 인도주의적 문제라는 점에서 정부로서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

양창석 통일부 홍보관리관이 즉각 “이산가족 분들에게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나가겠다”고 밝힌 것도 파장을 막아보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발언으로 보인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통일부는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중단을 카드로 빼들었지만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의미하는 미사일 발사의 출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쌀과 비료의 지원 재개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선 북측이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서는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에 따라 다음달 평양에서 열리는 8.15통일대축전에 정부 대표단이 참석할 지 여부가 주목된다.

정부는 대북 대화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참석하는 방안과 미사일을 둘러싼 대립상황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축제 성격이 짙은 이 행사에 참석할 필요가 있느냐는 여론을 감안해 불참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9차 장관급회담이 아무런 성과없이 끝난 상황이어서 8.15행사에 대한 정부의 부담은 더 커졌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미사일 발사와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 현안을 풀기 위해서는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밖에 없다는 현실론도 존재한다.

한편 지금까지 진행된 14차례의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북측이 일정을 합의해놓고 연기한 것은 제3차(2000년 12월 예정)와 4차(2001년 10월 예정) 등 2차례다. 3차는 북측이 내부사정을 이유로, 4차는 9.11테러 이후 우리 측의 경계태세 강화를 이유로 연기를 통보했다.

물론 이번에는 다음달 예정된 이산가족 화상상봉 행사를 중단한다고 통보해 와 성격은 다르지만 지금과 같은 긴장상황이 이어진다면 추석을 전후해 열릴 것으로 예상됐던 15차 이산가족 상봉도 무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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