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길 前 유엔주재대사·문정인 연세대 교수 대담
만장일치 안보리 결의 구속력
변화한 中 몰라보고 벼랑끝 전술



◇ 박수길 前유엔주재대사 고려대 석좌교수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대북 제재를 명시한 유엔 안보리 결의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결의문 채택에서 읽히는 미국의 전략, 중국의 입장, 일본의 구상은 어떤 것인가. 결의문을 즉각 배척하고 추가 강공책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은 앞으로 어떤 행동을 보일 것인가. 한국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나. 한반도 상공을 덮고 있는 ‘핵-미사일 난기류’를 박수길 전 유엔주재대사와 문정인 연세대 교수의 대담으로 풀어본다. 대담은 김현호 선임기자의 사회로 진행됐다.

▶박수길=이번 안보리 결의 채택은 안보리가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사태에 대처하는 새로운 방안을 발전시켰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번 결의는 (군사조치까지 가능한) 유엔헌장 7장을 인용하지는 않았다.

6·25 때의 결의도 7장을 인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결의는 7장을 원용하지 않으면서도 안보리가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에 특별한 책임을 진다고 천명하면서 대북 제재 내용을 밝히고 있다. 유엔헌장 25조는 유엔 회원국은 안보리가 한 결정을 수용하고 이를 이행할 의무를 갖는다고 돼있다. 이번 결의는 구속력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문정인=안보리 결의라는 게 안보리 내부의 정치적 역동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에 일본이 미국과 함께 낸 결의안은 7장을 원용한 제재 구속력을 갖는 것이었고,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 대안을 냈고, 결국 영국 중재안으로 채택됐다.

이번 결의가 구속력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국내법 준용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개 상임이사국은 물론 비상임10개국까지 15개국이 만장일치로 북 미사일 발사에 대해 규탄하고 필요하면 제재할 수 있는 국제적 기반을 만들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박수길=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이 이런 대북 결의를 주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북한은 자기들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국 잘못된 판단으로 한국과 우호국인 중국의 입장까지 어렵게 만들었다.


◇ 문정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 /이덕훈기자 leedh@chosun.com


▶문정인=결의문 채택 과정에서 가장 큰 득을 본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유엔에서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고 국내 정치적 효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일본이 이번 일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외교적 우위를 확보하고 한반도 문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를 잡으려 한다면 곤란하다.

여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은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고 본다. 만약 한국이 일본안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지 않고 찬성했다면 한국 입장이 우스꽝스러워졌을 것이다.

▶박수길=일본이 가장 득을 봤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번 문제는 일본, 미국의 득실문제가 아니라 국제평화와 동북아 안보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한반도의 문제이고, 지역의 문제이며, NPT(핵확산금지조약)체제의 문제이자 미사일시스템에 관한 문제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제재문제에 대해 곧바로 반대를 명시적으로 표명한 것이 바람직했느냐에 대해서는 생각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앞장서 반대한다고 할 것 없이 침묵하는 것이 정책적 선택으로 좋았지 않았나 싶다.

이번 사태는 북한이 국제사회 전체와 맞서는 구도이다. 이런 구도에서 한국이 너무 민족 공조로 기울면 국제사회의 외면을 받게 된다. 한국민의 정서와도 맞지 않다.

▶문정인=분명한 것은 만약 북한이 대포동 2호 추가발사 또는 핵실험을 하면, 결국 헌장 7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 결의문 통과가 북에 준 메시지는 6자회담에 나오고 미사일 유예하고 해서 국제사회 일원으로 행동한다면 더 이상 제재는 없다는 인센티브 측면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번 결의가 갖는 양면성이 있다.

▶박수길=과거에는 한미일 3국 정책 조정이 잘 됐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미일 간에는 잘 되지만 한국은 미국 일본 양쪽으로부터 다소 소외당하는 것 같다.

이번에도 미국과 일본은 처음부터 한국과 협의하지 않고 어느 단계가 지나고서야 협의한 것 같다. 그러니 일본이 대북 선제공격론을 언급했을 때 한국이 강하게 반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이 일본하고만 중요한 것을 다 논의하고, 한국은 그 다음이 된다면, 미국의 한일 간 정책 조절 능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문정인=참여정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다. 헌장 7장 원용 문제가 나왔을 때 정부가 강력 대응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미국이 3국공조를 잘 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사실 7월 3일까지도 한미간 합의가 충분히 있었다.

북한이 대포동뿐 아니라 스커드-노동까지 발사하는 바람에 차질이 있었다. 세 가지 미사일을 다 쏜 바람에 일본이 강하게 나왔고, 한미공조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비쳤다.

▶박수길=북한은 93년에도 핵문제를 벼랑끝 전술로 몰아가 효과를 보았고 98년에도 그랬다. 그러나 당시는 미국 클린턴-중국 장쩌민 체제였지만 지금은 부시-후진타오 체제다.

벼랑끝 전술이 통하지 않는다. 미국은 차치하고 북한은 이번에 중국에 당한 거다. 중국도 이젠 북한을 마음대로 놔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문정인=지금 북의 행태는 관성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한다. 강하게 밀어붙이면 미국 등이 자기들 요구를 수용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북한이 미일 강경파의 함정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미일 강경파들이 “북한은 불량국가다”라고 해 왔는데 북한이 실제로 이런 행동을 해 버린 것이다. 미일 강경파와 북 군부사이에 ‘적대적 제휴’가 이뤄지는 듯한 형국이다. 북한 군부 힘이 너무 커진 것 같다. 군부의 힘은 미일의 압박 고립정책에서 나온다.

북한이 앞으로 핵실험은 모르지만, 다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태를 냉철하게 검토해서 새로운 결단을 통해 반전의 계기를 가져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북도 어렵고 한반도의 긴장도 고조될 수 있다.

▶박수길=북이 어떤 형태로든 6자회담에 복귀해서 한두 번 나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나온다고 해서 문제가 쉽게 해결되겠는가. 6자회담이 재개되지만 진전은 없는 형태가 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란 느낌도 든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미일 3국이 공조를 잘해서 같은 메시지를 보내면 북을 유화적으로 이끌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북한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사업은 계속한다고 미리 못박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문정인=미일의 지나친 대북 강경책, 특히 군사적 행동은 정부가 수용 못할 것이고, 그것에 대한 기본적 합의만 있다면 미일과 공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의 행동이다. 북한이 계속 일방적으로 나간다고 하면 우리정부도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도 시범사업 이상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의 금융제재로 묶인) 2400만달러 때문에 모든 판을 깨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있을 수 없다.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6자회담에 나와서 그 안에서 핵이든 미사일이든 얘기하고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정리=황대진기자 djhw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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