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지난 11일 열린우리당 지도부 및 당 소속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들과의 청와대 만찬 회동에서 미국의 대북 압박과 관련, ’선참후계(先斬後啓: 일단 처형하고 따짐)’라는 고사성어를 빌려 대북문제에 대한 고민의 일단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당시 만찬에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언급, “북한이 달러를 위조했다는 증거를 보여주지 않고 북한에 장부부터 보여달라는 것”이라며 “이는 선참후계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이 참석자는 “이라크 사태를 보면 미국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단정해놓고 친 거 아니냐는 시각이 있고, 과거에도 그런 식으로 해서 많은 오류와 피해를 야기했다”며 “노 대통령은 그런 고민을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하면 만사가 편하지만, 이렇게 선참후계식으로 되면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는 고민을 얘기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의 대북강경 입장을 무조건 추수할 경우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할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노 대통령이 신중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또 “조지 부시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선과 악의 대립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미국을 더욱 설득하기 어렵다”며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미국에 양보를 요구하는 정치적 압박행위라고 본다”라고 말해 미사일 문제를 외교적 노력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정태호(鄭泰浩) 청와대 대변인은 “외교적 문제도 고려해야 되므로 그런 언급이 있었는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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