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 정면 비판한 청와대 글이 발단
고이즈미 “日은 납득할 수 없다” 불쾌감
외무성 “비생산적” 나종일 대사에 항의


일본 정부를 정면 비판한 청와대 홍보수석실 명의의 9일자 글에 대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10일 밤 기자들에게 “그런 견해에 찬성할 수 없고 일본으로선 납득할 수 없다”며 직접 반박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문제를 둘러싸고 일·북이라는 기본 갈등축 외에 한·일 갈등축이 본격적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청와대는 9일자 글에서 “(한국은) 이 사건을 (일본처럼) 군비 강화의 명분으로 이용할 일도 없다”면서 “굳이 일본처럼 새벽부터 야단법석을 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이 글은 이어 “(우리는) 야단법석으로 공연히 국민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공개 비판에는 일본 내 보수정치세력이 이번 사태를 군비 증강 기회로 활용하려 한다는 청와대측의 기본 인식이 깔려 있다. 청와대가 이를 인식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공개적으로 표출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대변인인 아베 신조(安倍晉三) 관방장관은 10일 오전 정례회견에서 “일본을 사정권 안에 두고 있는 노동 미사일과 대포동 미사일이 일본에 대한 위협이라는 것은 틀림없으며, 이에 대해 일본이 위기감을 갖고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아베 장관은 “(한국이) 그런 표현을 사용한 것은 유감”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일본 외무성의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사무차관도 이날 나종일(羅鍾一) 주일 한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생산적이지 않다”고 항의했다. 이에 대해 나 대사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표명한 것이 아니며, 일본 정부를 비난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 이규형 외교부 제2차관(왼쪽)은 10일 오시마 쇼타로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결의안 문제를 협의했다./이명원 기자


이날 이규형(李揆亨) 외교통상부 제2차관이 외교부 청사로 온 오시마 쇼타로(大島 正太郞) 주한 일본대사에게 악수하는 포즈를 취해 줄 것을 요청하자, 오시마 대사가 어깨를 들썩이며 어색한 표정을 지은 것도 이런 감정이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다.

방일 중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미사일의 표적은 한국”이라면서, “6자회담 참가국들이 생각이 다를 경우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말해, 한·일 양국의 냉정한 대응을 촉구했다.

한편 10일 한국 외교통상부 추규호 대변인의 말을 전한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보도내용도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IHT 보도 내용은 추 대변인이 “한국은 끝까지 일본과 같이 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유엔의 대북결의안에 대해) 중국이 비토권을 행사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추 대변인이 그렇게 말한 게 사실이라면 미·일과 노선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가 공식화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대북결의안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아 왔다. 그러나 추 대변인은 “기자와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은 있으나 제재에 반대한다거나 중국의 비토권을 기대한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도쿄=정권현특파원 khjung@chosun.com
신정록기자 jrsh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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