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는 ‘위대한 지도자’의 초상화와 동상이 넘쳐흐르며 학생들은 교실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지은 책을 암송한다.

지도자의 어머니는 국모로 받들어지며, 국민은 지도자를 항상 찬양해야 한다.

대통령궁과 모든 관공서 건물은 대리석과 금으로 돼 있으며 지도자의 20m 금동상은 태양의 방향에 따라 24시간에 한 바퀴씩 회전한다.



이곳이 북한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북한을 꼭 빼어닮은 투르크메니스탄(Tukmenistan)이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 중의 하나인 투르크메니스탄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곳이지만 북한에서는 ‘뚜르끄메니스딴’으로 잘 알려져 있는 중앙아시아의 독재국가.

이 나라는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독립한 이후 ‘투르크멘바시’라는 별칭을 지닌 세파르무랏 니야조프 대통령이 집권, 15년간 개인우상화 정책을 펴왔다.

때문에 투르크메니스탄은 서방세계에 ‘중앙 아시아의 북한’이라고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중립기념문' 정상에 설치된 니야조프 대통려의 금동상. 24시간 태양의 방향에 따라 움직인다.


환갑을 훌쩍 넘겨 심장수술까지 받은 바 있는 니야조프 대통령은 사실 그다지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1940년 수도 아스하바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킵차크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948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인해 가족이 몰살, 졸지에 고아가 되었다.

이후 고아원에서 성장한 니야조프는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유학, 기술자가 되어 조국으로 돌아와 발전소에서 근무했다.

그러다가 1962년 공산당에 가입한 뒤 그는 아스하바트 시의회와 모스크바의 중앙위원회 등으로 승진하더니 결국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부터 투르크메니스탄 공산당 총무로 발탁되면서 권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1991년 소련 붕괴로 갑자기 독립하게 된 투르크메니스탄을 떠맡은 니야조프는 이후 독특한 행적으로 나라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우선 자신의 동상에 모두 금칠을 하게 해 각 마을에 세우게 하더니 모든 관공서와 호텔 등 주요 시설물에 자신의 초상을 달게 했다.

자신의 이름을 ‘베이크 투르크멘바시(Beyik Tukmenbasy)’ 즉 ‘투르크멘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고친 뒤 직접 도시계획에 나서 아스하바트 시내를 호화스런 대리석으로 장식했다.

대통령궁을 비롯, 시내 중심가는 그리스 신전 같은 대리석 건물로 가득하다. 물론 자신의 대형 초상화는 빠뜨리지 않았다.

또 그는 모든 영화관을 폐쇄하고 발레와 오페라를 비롯한 공연 문화를 투르크멘인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금지시켰다.


◇◇ 대통령의 초상이 걸린 교실에서는 '루흐나마' 수업이 한창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을 중립국으로 선언한 그는 ‘중립기념문(Arch of Neutrality)’을 지으면서 자신의 금동상을 태양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함께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나라 곳곳에는 ‘인민, 국가, 그리고 위대한 투르크멘바시!(Halk, Watan, Beyik Tukmenbasy!)’라는 선전문구를 걸어놓았다.

집필활동에도 열심인 그는 투르크멘의 역사와 자신의 윤리관을 담은 ‘루흐나마’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이 책은 시리즈로 5편까지 나왔다.

학생들은 초등과 중등교육을 받는 동안 이 책을 필독해야 하며 루흐나마 졸업시험에 통과해야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책을 달달 외워야 한다는 뜻이다.

심지어 이 책 자체를 우상화해 독립공원에는 이 책의 대형 동상이 있을 정도다.


◇투르크멘인은 결혼을 하면 꼭 대통령 동상을 방문한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북한과 비슷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과 북한의 큰 차이점은 바로 이 나라의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에 있다.

국토의 90%가 사막으로 덮여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은 석유 매장량이 세계 다섯 번째로 많다. 석유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으로 니야조프는 서방세계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재를 유지할 수 있다.

니야조프에 관한 일화가 한 가지 있다. 몇 년 전 러시아의 한 여기자가 그를 인터뷰하면서 “왜 수없이 동상을 세우는 등 우상화 정책을 펴는가”라고 질문했다.

그는 “싫으면 안 보면 될 것이 아닌가”라는 말로 응수했다고 한다. ‘마이 웨이’라도 이 정도면 심했다.
/글ㆍ사진=정은진 ‘WpN·OnAsia’ 프리랜서 사진기자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