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서 별도제작 150세트… 중고차·굴비도

개성공단 1호 제품인 ‘개성냄비’가 출시된 2004년 말 최고급 냄비세트들이 남한에서 별도로 제작돼 북한 고위 간부들에 대한 상납(上納)용으로 제공됐던 것으로 9일 밝혀졌다.

개성냄비 제조업체인 소노코쿠진웨어(이하 소노코·회장 김석철)는 냄비세트 외에도 자동차와 고급 양주, 의약품, 달러 등을 북측 인사들에게 수시로 전달했다는 관계자들의 진술도 나왔다.

이에 따라 북한 근로자의 임금을 체불했던 것으로 밝혀진 이 회사가 북한 간부들에게는 ‘뇌물’까지 줬다는 도덕적 비난과 함께 실정법 위반 논란도 예상된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 박준효)는 2004년 12월 15일 개성공단 준공과 함께 개성냄비가 첫 출하될 당시 소노코측이 합작기업이었던 리빙아트의 인천공장에서 최고급 주방냄비 150세트(1세트에 냄비 4개)를 만들어 북한으로 보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 냄비세트는 시중에서 50만원대에 팔리는 것으로 ‘개성냄비’보다 25배나 비싼 제품이다.

소노코 관계자는 “김석철 회장이 당시 평양으로 갈 제품들이기 때문에 잘 만들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당시 ‘개성냄비가 남한에서 만들어 북으로 옮긴 뒤 개성에서는 포장만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이는 선물용 고급 냄비세트가 세관 신고 등을 거쳐 비밀리에 북한으로 올라간 것이 와전됐던 셈이다.

소노코 김 회장은 또 개성공단 사업 과정에서 북한 간부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시가 500만원의 중고 자동차 2대와 발렌타인 30년산 고급 양주, 의약품, 달러 등 고가의 ‘뇌물’을 수시로 전달했다고 한다.

검찰이 확보한 소노코 관계자들의 진술에는 김 회장이 뇌물을 구입한 시점과 전달한 북측 간부의 이름 등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명절을 맞아 북한 간부에게 줄 수백만원짜리 굴비세트를 구입했으며, 유력 인사의 아들과 부인을 위해 고급 기타와 수백만원짜리 의약품을 수차례 사들여 개성공단에 몰래 반입했다는 내용도 진술에 포함돼 있다.

김 회장의 동업자였던 리빙아트 강만수 사장과 소노코 관계자는 “북한 근로자 체임(滯賃)까지 발생하는 마당에 간부들만 챙기는 식의 경영은 잘못된 것이라고 (김 회장에게) 여러 차례 시정을 요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소노코측이 개성공단에서 남한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 건축물을 짓고 투자자를 유치하는 행위 등과 북측 간부들에 대한 ‘고급 뇌물’들이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최근 소노코 김 회장을 횡령과 배임 등 혐의로 고소한 소노코의 주주들과 리빙아트 강 사장, 통일부에 소노코의 비리를 제보한 내부 고발자 등을 잇따라 조사했다.

검찰은 또 지난주부터 통일부 개성공단 관련 직원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시작했으며, 조만간 김석철 회장 주변에 대한 전면적인 계좌 추적에 나설 방침이다./강훈기자 nuku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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