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적으로 구사되는 벼랑끝 전술의 약발이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북한도 절감했을 것이다.”

이른바 제2차 미사일 위기 국면을 전체적으로 조망해온 한 외교소식통은 6일 ‘북한의 처지’를 냉소적으로 평가했다.

위기 때만 되면 되풀이되는 벼랑끝 전술에 이제 국제사회가 익숙하게 됐고 결국 그 부메랑이 북한의 고립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 시절 고비마다 ’위협 작전’으로 시종 게임을 주도하던 북한이 강성 부시 행정부의 ’무시작전’에 부딪혀 고전하고 있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관전평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이번 미사일 발사를 통해 미국과 아시아 동맹들을 분열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판”이라고 못박았다.

미국의 독립기념일(7월4일)에 불꽃놀이 하듯 7발이나 되는 미사일을 쏘아올렸지만 미국의 반응은 “미사일로 새롭게 얻을 것은 없다”는 냉담한 것이었다.

이런 미국의 기류는 지난달 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미 직접대화를 촉구하면서 “미국이 우리를 계속 적대시하고 압박하면 부득불 강경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고 엄포를 놓을 때부터 확연하게 드러났다.

오히려 “주머니에 갖고 있는 칼(미사일이든 핵이든)이 있다면 꺼내보라”는 식으로 북한의 도발을 부추긴 느낌마저 줄 정도였다.

6일에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과의 문답을 통해 미사일 발사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다른 형태의 보다 강경한 물리적 행동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미국의 시선은 여전히 ’외면’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통한 제재는 물론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안, 그리고 관련국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동원 해 애초 약속한 ’상응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의 기세를 볼 때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통해 얻어낼 성과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를 중시하며 대북 압박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던 한국 정부마저 북한이 “실질적 부담을 안을 수 밖에 없는 조치를 검토하겠다”(이종석 통일부장관)고 밝히고 나섰다.

물론 한미 양국 정상이 미사일 사태를 풀기 위해 ‘외교적 해결원칙’을 재확인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북한의 자제와 회담 복귀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금융제재로 어려움에 처한 북한에 대한 쌀과 비료 등의 추가 지원을 한국 정부가 유보하게 되면 북의 처지는 더욱 옹색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CNN방송은 5일 미사일 발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을 전하면서 “길거리 시민들은 위기감 보다는 ‘북한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벼랑끝 전술로 또 나오는구나’하는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평상시에도 에너지 부족에 허덕이던 북한의 현실에서 석유 등 막대한 에너지원을 제공하는 중국까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움직임에 가세할 경우 북한의 피해는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심화될 수도 있다.

북한이 지난달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그토록 평양으로 초청하려 했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5일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워싱턴에서 북한 정권이 외부 압력을 가해야만 반응을 하는 속성이 있다면서 “중국은 그들에 대해 분명히 어느 정도의 압박수단을 갖고 있다”고 말한 대목은 이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힐 차관보는 한·중·일 3국 순방을 통해 본격적으로 북한 압박작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작업은 ‘북미 양자접촉’이나 ’금융제재 해제’니 하는 전제조건을 걸지 말고 무조건 6자회담에 복귀한다는 북한의 결단이 현실화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이 대목에서 국제정치학 이론에 나와있는 ‘게임이론(game theory)’ 가운데 ’치킨게임(겁쟁이들의 게임)’이 연상된다는 외교전문가들이 많다.

승부를 가리기 위해 두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 서로 마주보고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목숨이 아까워 먼저 피하는 쪽이 지는 게임이 바로 치킨게임이다.

부시 행정부 들어 지난 10여 년 간 북한의 벼량끝 전술에 학습효과가 생긴 미국측은 북한에 치킨게임을 선언한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의 벼랑끝 전술을 자꾸 들어준 결과 북한의 버릇만 나빠졌다”면서 “북한에 기죽지 말고 먼저 대결장으로 나가 북한의 카드를 확인해봐야 한다는 기류가 워싱턴에 퍼져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새롭게 구사한 게임의 룰이 북한의 고질적인 벼랑끝 전술을 차단하는 효과를 거두게 될 지, 아니면 마지막 순간에 핸들을 돌려버리고 말 지, 관전 포인트가 하나 더 늘어난 형국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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