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료·쌀 지원 유보…남북장관급회담은 개최될 듯

북한이 5일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함에 따라 남북관계도 적지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단 쌀과 비료의 대북 추가 지원을 유보하기로 사실상 확정했다.

미사일 발사 전후의 남북관계가 같을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또 오는 11∼14일 부산에서 열릴 예정인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의 개최 여부도 재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단 대화의 모멘텀은 유지한다는 대북정책의 기조를 유지, 예정대로 개최되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 장관급회담 예정대로 열릴 듯 = 정부가 남북장관급 회담 개최 여부에 대해 여전히 고심중이지만 예정대로 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실은 이날 오후 늦게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공개한 ‘북한 미사일 관련 정부 대응방향’에서 “대화는 끊지 않고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혀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정부 분위기가 ‘대화’로 기운 것은 이럴 때일수록 대화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은 데다 북한에 대해 6자회담 복귀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자고 촉구한 마당에 스스로 남북간 대화의 판을 엎어버리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부담도 따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청와대 안보실도 “남북대화는 대화로 문제를 풀자고 하면서 대화를 중단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상황관리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를 심사숙고해 나가야 한다”고 이 같은 고민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정부 당국자는 “청와대브리핑을 보면 남북장관급 회담 연기보다는 대화를 해 나가는 데 방점이 찍혀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외 정세를 감안해도 우리가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미사일 발사 위기 초기부터 강경대응해 온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대화 노력을 기울여 온 중국마저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강행으로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직접 나서 북한의 미사일 발 사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우다웨이(武大位) 외교부 부부장이 지난 달 말 회 담 참가국에 6자회담 수석대표 비공식 회동을 제안해 놓았지만 결국 허사로 돌아간 셈이 됐다.

또 오는 10일과 11일 후이량위(回良玉) 부총리와 우다웨이 부부장이 각각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지만 북한과 원만한 대화가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북한과 이번 문제를 대화로 풀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당사자가 우리 정부 이며 이미 마련돼 있는 대화의 통로가 19차 장관급회담인 만큼 예정대로 대화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장관급회담을 연기했을 때 벌어질 상황을 수습할 방안도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다.

남북관계는 장기간 경색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고 아울러 이번 미사일 문제도 미궁에 빠진 북핵 문제와 맞물려 장기화로 굳어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과 한번 대화를 중단하면 이를 재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장관급 회담을 했을 때와 안했을 때의 실익을 포함해 여러 가지 변수를 반영해 개최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대화 끈 놓을 가능성도 배제못해 = 남북관계에서 그동안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리 정부가 먼저 남북회담의 연기를 요청한 적은 없었다.

2002년 10월17일 ‘북한이 핵무기 개발계획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는 미국의 발 표가 있은 지 불과 이틀 뒤에도 우리 정부는 예정대로 제8차 장관급회담을 갖고 북 측과 “핵 문제를 비롯한 모든 문제를 대화의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고 합의했다.

정부는 이처럼 북한과 관련된 제반 문제는 대화를 통해 푼다는 기조아래 대화의 틀을 유지해 왔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진 동안에도 남 북 간 대화의 모멘텀은 유지해 북핵 문제 해결을 주도한다는 입장이었다.

작년 11월 5차 회담 이후 6자회담이 열리지 못하고 있던 지난 5월 초 노무현(盧 武鉉)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에 대해 많은 양보를 하겠다. 제도적, 물질적 지원은 조건없이 하려고 한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전략과 궤를 같이 한다 는 평가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장관급회담 연기를 결정한다면 이는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및 북핵문제 해결의 기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그럼에도 현재 일정이 확정된 유일한 고위급 회담인 장관급회담의 연기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미사일 발사로 강경해진 국내외 여론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달 말 진행될 예정이던 경의선·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이 행사를 하루 앞두고 북측의 일방적 통보로 무산된 데 이어 북한이 결국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국내 대북 여론이 극도로 악화돼 그동안의 화해 기조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지를 냉정하게 평가해볼 필요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또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대화 노력을 기울여 왔던 중국도 북한에 대해 비판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는 등 국제사회의 부정적 기류도 염두에 뒀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내외 여론이 악화일로로 치닫는다면 대화가 연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관측도 여전히 유효하다.

◇ 인도적 지원도 추가 지원은 중단 = 정부는 미사일 발사에 따른 조치로 쌀과 비료의 대북 추가 지원을 유보하기로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수 차례에 걸친 경고에도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는데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지나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 외교장관과 가진 전화통화에서 “남북관계를 평소와 같이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이 같은 정부 방침을 분명히 했다.

북한은 이미 우리가 지원한 비료 35만t외에 10만t을 추가로 원하고 있고 차관 형식으로 지원되는 쌀 50만t도 요청해 왔다.

우리 정부는 당초 제19차 장관급회담에서 추가 지원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었지 만 회담 개최 자체가 불투명한데다 예정대로 열리더라도 추가 지원은 하지 않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비료와 식량은 그동안에도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남북관계를 이어가 는 ’고리’로 활용돼 왔다.

2004년 7월 제10차 남북철도도로연결 실무접촉 이후 10개월간 중단됐던 남북 당 국간 대화가 작년 5월 차관급회담으로 재개된 것도 남측이 비료를 지원하지 않으면 서 북측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검토하고 있는 유엔 안보리를 통한 제재가 1998년 대포동1 호 발사 때 드러났듯 실효성이 없고 북한에 더 이상 가할 수 있는 경제적 재제 조 치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북한을 실질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쌀과 비료의 지원 유보라는 것이다.

청와대도 청와대브리핑에서 이를 염두에 둔듯 “북한이 실질적인 부담을 안을 수 밖에 없는 조치를 검토,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쌀과 비료의 추가 지원 중단이 복잡하게 꼬여있는 이번 사태를 비교적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정부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중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민간 주도로 진 행되는 협력사업이기 때문에 미사일 문제로 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대북 리스크가 부각된 상황에서 계획대로 연내에 개성공단 본단지 1단계 분양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아울러 현재 남북 사업자간에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진 금강산관광 종합개발계획 의 확정과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알려진 내금강 관광 등도 예정대로 추진될 수 있을 지 불투명해졌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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