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배로는 밀물 썰물에 5㎞도 벗어나기 어려워요.”

‘쪽배’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망망대해에서 북한 선박에 구조됐다는 김영남(45)씨의 금강산 회견에 대해 그가 실종됐던 선유도 어민들은 “말이 안 된다”고 일축했다.

선유도 1구 송모(57)씨는 “선유도는 사방에 섬들이 둘러싸 배가 빠져나가기 어렵고 김씨 실종 무렵에는 바람도 없었다”며 “조류가 밀물이면 군산 쪽으로, 썰물이면 위도 쪽으로 흐르는데 배가 말도 넘어 서쪽 외해로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송씨는 “김씨 실종 당시 그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2~3일간 군·경 및 다른 주민들과 함께 인근 무인도 등 10여 개 섬을 수색했었다”며 “당시 선유도에 노 젓는 배가 몇 척 있었으나 한 척도 분실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유도 2구 김모(61)씨도 같은 이야기였다. 김씨는 “밀물에 맞춰 노 젓는 배로 열심히 저어야 군산까지 간다고 들어왔는데, 설사 조류가 서북쪽로 흘렀다 해도 어청도 넘어 50㎞ 이상 떨어진 영해로 나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군산대 해양학과 이상호 교수는 “썰물·밀물에 표류했어도 배가 5㎞ 이상 갈 수는 없고, 해류 영향을 5%쯤 인정해도 밀물·썰물로 바뀌면서 배가 표류를 시작한 선유도 해역 근처로 되돌아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쪽배가 서해 연안 해류에 의지해 북한까지 갔다면 한 달은 넘게 걸렸을 것”이라며 “김씨가 구조됐다면 선유도 인근 해역에 북한 배가 있었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김씨의 회견 내용 중 불량배들과 다툼이 있었다는 정황은 대체로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 실종 직후인 1978년 8월 17일 전북일보 사회면에 김씨 실종기사로 ‘사고 당일 여자친구 등 4명이 선유도에 간 뒤 오후 7시쯤 불량배인 김모(22)씨가 시비를 걸어와 해수욕복 차림으로 해변 우측으로 끌고 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는 기사가 실렸다.
/전주=김창곤기자 (블로그)cg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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