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金英男·45)씨는 1978년 8월 5일 친구들과 전북 군산 선유도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실종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17세, 군산기계공고1년생이었다. 가족들은 김씨가 익사한 것으로 생각하고 제사를 지내왔다.

하지만 이로부터 2년이 지난 뒤 북한은 대남(對南)방송에서 김씨가 북한에서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수사당국은 김씨가 해변가를 돌아다니다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판단했다.

납치된 후 김영남씨는 김정일 정치군사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대남공작 기관인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의 연구원으로 일하며 남파간첩을 육성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橫田惠)씨의 남편이었다는 사실은 일본 정부에 의해 확인됐다. 일본 정부 대표단은 2004년 평양을 방문해 자신을 메구미씨의 남편이라고 밝힌 ‘김철준’을 만났다.

김철준은 당시 일본 대표단에게 “1986년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만났던 메구미와 결혼해 딸을 낳았다”며 “메구미는 딸을 낳은 후 산후 우울증을 앓다가 1994년에 자살했다”고 전했다.

일본대표단은 당시 현장에서 김영남씨의 피부 조직 등을 수거해 비밀리에 DNA 확인 작업을 했다. 일본은 김씨가 메구미씨의 딸로 확인된 김은경(혜경)양의 친부(親父)인지를 확인한 후, 1977~78년 당시 남한에서 납북된 고교생(4명) 가족들의 DNA와의 확인 작업을 마쳤다. 일본은 지난 4월 “김철준은 남한에서 납북된 김영남”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북한은 일본측 발표에 대해 공식 언급을 하지 않다가 지난 6월 김영남씨가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김씨 모자의 상봉에 합의했다. 김씨가 납치된 지 27년11개월 만이었다./김정훈기자 run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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