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체제

북한은 평화체제의 수립을 위해 북·미 간 평화협정의 체결과 주한미군의 철수를 지속적으로 주장하여 왔다. 한미동맹이 6·25 전쟁 이후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군사적 긴장을 상정한 것이고, 주한미군이 대북 억지 및 방어를 위한 것이라면, 북·미 간의 평화협정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북핵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평화체제 수립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우면 해결 전망은 더욱 어두워질 것이다.

미국은 탈냉전, 반테러의 안보환경 속에서 진정한 평화는 ‘자유의 확산’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우리식 사회주의’와 수령옹위체제를 보장하는 평화, 즉 ‘수령 평화’를 주장하는 북한과, 독재의 종식과 대량 살상무기 비확산, 불법행위 금지 등을 가능케 하는 평화, 즉 ‘민주평화’를 추진하는 미국, 그리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이해 관계 속에서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하는가이다.

무엇보다 현재의 상황에서 평화체제의 수립 논의는 북핵 해결과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미·북 간의 안보 대립을 해소하기 전에는 평화체제 수립논의가 진전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북핵 해결을 위해 평화체제가 선결조건, 혹은 수단으로서 사용될 수는 없다.

오히려 미·북 간 위기의 국면을 거친 이후,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전략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북핵 폐기의 실질적 진전과 북한의 개방, 개혁 정책이 추진될 때, 병행적으로 진정한 평화체제가 수립될 정치적 조건이 마련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북한 수령옹위체제의 잠정적 유지와 미국 민주주의 확산의 양극점 사이에서 한국 노력의 주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북한의 체제변화 자체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정책은 협상에 의한 해결을 저해할 수 있지만, 북한의 리더십 성격의 변화, 북한의 행위변화를 유도하여 한국이 원하는 한반도와 남북 화해협력을 이룩해야 할 것이다./전재성(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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