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존재감’이 강한 나라다. 워싱턴에 있을 때 미국 기자나 학자 친구들은 “한국에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국가적인 끼’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텍사스주 지역신문 기자가 ‘한국의 저출산 현상’을 취재하러 서울로 날아가고, 미국의 어느 작가가 ‘한국 여성의 의식변화’를 추적한 책을 준비할 때, ‘한국이니까’ 관심을 갖는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스타 국가’이자 ‘신동(神童)국가’라서 남다른 기질과 자신감을 갖게 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밖에서 봤던 거칠지만 강렬했던 매력이 안에서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무기력하고 약한 나라에서도 피할 법한 말과 행동이 자주 등장한다. 이달 초 제이 레프코위츠 미국 북한인권담당특사가 개성공단 사업을 비판했을 때, 우리 정부는 “편파적인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했다.

‘내정간섭’이란 ‘다른 나라의 정치나 외교에 참견함으로써 그 주권을 속박·침해하는 일’이다. ‘내정간섭’은 이제 국제무대에서 ‘구식 용어’다. 어떤 의미에서 훌륭한 외교란 표시 나지 않는 내정간섭을 의미한다.

일본과 캐나다 등은 미국의 입법과정을 연구해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자국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미리 설득한다. 로비스트를 활용하든 외교관이 나서든 다른 나라 국내정치에 슬쩍 한발 들여놓는다. 미국의 대한(對韓) 여론을 바꾸겠다는 우리의 홍보전략도 그런 차원에서 이뤄진다.

그러므로 외국의 ‘내정’을 더 깊이 알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길을 찾아낼 줄 아는 것이 경쟁력이다. 사실상 적극적 내정간섭의 시대인 것이다. 굳이 그런 표현을 써가며 피해의식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

지난 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06년 세계 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이 61개국 중 38등을 했다. 작년에 비해 9단계 뒤로 밀린 결과를 보고 많은 언론들이 일종의 ‘낙제’로 해석했다. 정부는 설문조사 시점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명했고, 또 일부 언론이 ‘정부의 비효율성’만 지나치게 부각시켰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민간부문이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지 않은가. IMD 외에 다른 연구기관에서도 저마다 다른 기준으로 국가 경쟁력을 평가해온 마당에, 이번 점수가 나쁘다고 정부가 기죽거나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 또한 ‘약한 모습’이었다.

우리 경제규모는 세계 10위다. 세계 3위의 반도체 생산국가이며, 전 세계 자동차의 5% 이상을 생산하는 6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다. 전 세계 선박의 반 이상을 혼자 만들다시피 하는 나라다. 미국에 가장 많은 유학생을 보내 공부시키고 있다. 아시아인들은 한류 드라마와 스타에 열광한다. 65만 병력을 갖춘 세계 6위의 군사대국이다.

이런 나라는 선진국인가, 국가경쟁력이 약한 나라인가? 굳이 남에게 물어봐야 아는 것일까?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을 남에게만 맡겨 놓으면 평생 남에게 휘둘리게 돼 있다.

지난주 열린우리당의 김한길 원내대표가 서울대 특강에서 ‘택시 운전기사 리더십’을 말했다. 좋은 리더는 미리 지리와 교통상황을 잘 공부해두었다가 국민들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은 밖에서 보면 ‘명품차’인데 막상 타보면 승차감이 그저 그렇다. 운전기사가 명품차를 ‘소형 중고차’ 몰듯 하는 모양이다. 한국에 열광하는 미국 친구들에게 말해줘야겠다. “밖에서 보니까 매력 있다고? 안에서는 피곤해 죽을 지경이야. 길도 좋고 차도 좋은데 운전사가 별로인가 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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