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할 북한문화재 특별전 출품 예정작인 서포항 출토 뼈피리(좌), 고려 태조 왕건 청동상(중), 신암리 출토 청동칼(우)/연합자료사진

태조 왕건상에 취재진 몰려…내달 12일부터 전시

다음달 12일 개막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북녘 문화유산-평양에서 온 국보들’ 특별전을 위해 서울 땅을 밟은 북한의 국보급 문화재 90점 중 중요 유물 14점이 8일 오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공개됐다.

이날 취재진 100여 명이 몰려 성황을 이룬 기자회견에서 이건무 관장은 대규모 북한문화재의 서울 안착에 대해 “3월24일 개성에서 남북의 양 국립 박물관장이 합의한 내용이 결실을 맺은 것으로, 남북 문화 교류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자평했다.

이날 언론에 공개된 유물들은 북한의 국보급 문화재 14점이다.

서울에 온 90점의 북한 유물 중 국보는 50점, 준국보는 11점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추정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국보는 1천725점, 준국보는 658점이 있다.

이날 공개된 유물 중 단연 취재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것은 고려 태조 왕건의 청동 좌상이었다.

태조 왕건의 등신 좌상은 1992년 10월 고려 태조릉인 현릉의 보수 공사 도중 봉분 북쪽 5m 지점에서 출토된 것으로 발견 초기에는 청동 불상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북측 고고학자들의 오랜 연구 결과 고려 태조인 왕건의 좌상으로 결론이 난 상태다.

좌상이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고, 동상 근처에서 함께 출토된 옥띠 장식 등과 더불어 1428년 조선시대 기록 중 태조 왕건의 상을 능 옆에 묻었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이 왕건 상은 양식상 10-11세기 무렵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유물은 옷을 입지 않은 나신(裸身) 형태의 동상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머리에는 외관과 내관으로 이뤄진 왕관을 쓰고 있으며, 의자에 앉아 있는 형태의 좌상(坐像)인데 높이가 143.5㎝로 사람의 앉은 키와 거의 같은 등신상(等身像)이다.

발굴 당시에는 몸을 비롯한 여러 곳에 금도금을 한 조각과 얇은 비단 천들이 붙어있었다.

이에 대해 조현종 고고부장은 “당초에는 청동상 위에 도금을 했으며, 비단으로 만든 옷을 걸쳤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번 특별전에서도 완전한 나신이 아닌 어느 정도 옷을 걸친 채 전시될 예정이다.

’전’(顚) 자가 새겨진 고려시대 금속활자는 전시개최 합의 이후 최근 새로 첨가된 품목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도 형태가 거의 유사한 고려 금속활자가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한의 ’전’자 금속활자는 1958년 개성 만월대에서 발굴된 것으로, 활자 생김새와 글자 모양 등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 활자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복’(山옆에復)자 활자 역시 개성의 한 무덤에서 출토된 고려 활자로 전해지는데, 이 ’전’자 활자는 남측의 ’복’자 활자와 매우 흡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금속활자가 매우 작아 돋보기를 설치한 것에 비해, 신석기시대 후기의 ’생선뼈무늬 독’은 높이가 거의 1m에 달하는 대형 그릇이다.

1994년 평양시 삼석구역 호남리 표대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체적으로 단순한 V자 형태를 띈다.

바닥을 제외한 그릇 전면에 가로로 된 생선뼈무늬를 새긴 이른바 ’금탄리II 식 토기’.

바탕흙에는 굵은 모래가 섞여 있으며, 그 크기로 미뤄 음식을 저장하는 그릇인 ’독’으로 분류된다.

박물관 측은 “신석기 후기가 되면 대형 독도 많이 사용됐는데, 이런 유물 상의 변화는 생업경제에 있어 농경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확대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악기 중 가장 오래된 뼈피리는 기원전 2천년 후반기의 유물로, 새의 다리뼈를 잘라 만든 피리.

1961년 함경북도 선봉군에서 발굴된 이 피리의 몸체에는 한 줄에 일정한 간격으로 13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고구려와 발해의 유물도 있다.

고구려의 대표적인 금속공예품 중 하나인 배게 마구리 장식은 4-5세기 것으로 평양의 진파리 7호무덤에서 발굴됐다.

전체적으로 복숭아를 절반으로 잘라 옆으로 약간 누인 형태를 띤 이 장식품은 중앙의 2겹 테두리 속에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를 표현했고, 그 위쪽에는 봉황을, 양 옆에는 2마리의 용을 정교하게 표현해 놓았다.

무덤의 피장자의 머리 부분에서 한 쌍이 출토된 점 때문에 금동관의 일부로 보는 견해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피장자의 배게 마구리(양쪽 면)에 장식했던 금동판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발해의 치미(’망새’라고도 하며, 기와 끝에 얹는 용의 머리처럼 생긴 장식물)는 10세기 유물로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 용천부 내의 절터에서 출토됐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면서 펼친 두 날개 사이로 주둥이를 쏙 내민 형상에 진한 녹색 유약이 잘 조화돼 있다.

“평양의 안학궁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대형 치미가 출토된 바 있는데, 이를 통해 고구려와 발해의 문화적 계승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고 박물관은 설명한다.

개성의 불일사 5층 석탑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공양탑은 세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금동9층탑, 금동5층탑, 금동3층탑으로 탑신과 기단부가 별도로 제작되어 조립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따른 금동3층탑의 경우, 도금도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불일사는 고려 광종 대에 지은 절로, 현재는 절터만 남아있고, 5층 석탑은 개성시 고려박물관에 이전돼 복원전시되고 있다.

이외에 청동기시대의 거울 거푸집, 기원전 1세기의 쇠칼과 칼집, 고려시대 신계사의 향로 등도 이날 함께 공개됐으며, 단원 김홍도가 비단에 먹과 담채로 그린 선녀도와 석연 양기훈이 종이에 먹과 담채로 그린 붉은 매화 그림 역시 조선 후기의 화풍을 엿볼 수 있는 북한의 중요 회화 유물로 평가된다.

90점의 북한 문화재들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 이어 8월28일부터는 장소를 대구로 옮겨 10월 말까지 남한의 시민들을 만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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