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은 1970년대 후반에 출간됐다. 남한과 미군정을 부정적 시각에서 보는 이른바 ‘수정주의’ 연구자들이 전통적 역사 해석에 대해 뒤집기를 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기점으로 1980년대 들어 여러 소장학자들이 수정주의 시각에서 ‘해방-이후 3년사’ 연구에 집중적인 관심을 쏟았다. 반면 기성학계는 권위주의 통치에 눌려 당대사(當代史)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학캠퍼스를 중심으로, 뒤에는 일부 전교조 교사들에 의해 중·고교 교육현장에까지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영향력을 확대했다. 사실상 대세를 이루게 됐고,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1945년 8월15일 해방에 대한 해석부터 뒤집기 시작했다.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선전전 차원의 이야기가 반복되면서 어느새 ‘정설’로 자리잡았다. 남한은 미국의 허수아비 이승만이 민중의 반대를 억압하고 분단 정권을 수립했고, 북한 정권은 인민들의 뜻이 아래로부터 모아져서 김일성에 의해 수립되었다는 시각의 근원도 ‘해방전후사의 인식’이었다.

이런 시각은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정통성 또한 남쪽보다는 북쪽에 두어왔다. 북한은 친일세력을 말끔히 청산한 반면 남한은 친일 청산에 실패했다는 상투적인 도식이 이를 위해 동원됐다. 이런 도식은 깊은 연구와 치열한 학술토론을 거쳐 형성된 것도 아니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대한 반론 차원에서 나온 것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이다. 뉴라이트쪽 학자들이 중심이 됐다. ‘재인식’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갖고 있던 편향성과 오류를 많이 지적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안티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란 한계를 갖고 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재인식’을 모두 넘어서는 실증적 연구가 절실한 시점이다./이한우기자 h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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