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영화 누리려고 검사 되지는 않았다. 내 조국을…"

#장면1.

지난 2004년 7월 송두율 교수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뒤, 송 교수를 구속했던 수사팀의 공안검사와 저녁을 했다. 술이 꽤 돌았다.

그는 “송두율 교수가 미워서 구속한 게 아니다. 폐지 논란이 있지만 현행법인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 현행법상 구속 사유가 분명한데 어떻게 봐주느냐”고 했다.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는 “공안이든 아니든 검사라면 법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어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검사가 되지는 않았다. 내 조국을…”이라며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10여분을 말없이 울었다.

당시 구속 수사를 지휘했던 박만 서울지검 1차장은 검사장 승진에서 2년 연속 ‘물’을 먹고 옷을 벗었다.

#장면2.

지난 2004년 말 국가보안법 폐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뜨거웠다. TV 토론에서 한 패널이 국보법 조항을 잘못 해석하며 폐지를 주장하는 장면을 ‘공안통’으로 불리던 검사가 봤다.

그 검사는 해당 방송사 홈페이지에 그 패널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올렸다. “하도 답답해 난생 처음 인터넷에 글을 써봤다”고 했다.

그런데 몇 분 뒤 댓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아는 법무사에게 물어보니 패널의 주장을 반박하는 아이디 ○○님의 주장은 엉터리라고 한다. 수구꼴통, 반성해라”는 내용이었다. 그 댓글에 찬성하는 글들이 순식간에 나붙기 시작했다.

그 검사는 “국보법만 10년 이상 다뤄본 사람의 해석이 법무사보다 엉터리라는데 무슨 할말이 더 있겠느냐”고 했다.

#장면3.

현 정부가 막 출범한 2003년 초 서울에 근무하던 중간 간부급 공안검사가 지방 발령을 받았다. 그는 김대중(DJ) 정부와 현 정부 통틀어 ‘진짜’ 간첩 사건을 마지막으로 처리한 검사로 기억된다. 지방으로 가는 그에게 “곧 돌아오실 겁니다”라고 인사했다.

그 검사는 난데없이 자객 형가(荊軻)가 진시황을 죽이기 위해 역수(易水)를 건너기 전 읊었다는 시를 소개했다. ‘바람을 쓸쓸하고 역수는 차구나, 대장부 한번 떠나면 다시 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였다.

그는 “이번에 한강을 건너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정말 그는 3년째 한강 이남 지역을 맴돌고 있다.

#장면4.

이번 검찰 인사에서 강정구 교수 구속 의견을 올렸고, DJ 때 국정원장 2명을 구속한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했다.

법무부측은 “2002년 10월 서울지검 공안2부장이던 황 차장은 국정원 도청 의혹 사건을 무혐의 처리했기 때문에 문책 의미가 있다”고 했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부실 수사 책임을 묻겠다”는 인사 원칙을 밝혔었다.

그런데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이른바 ‘병풍사건(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처리하면서 편파 수사 논란을 일으켰던 박영관 당시 서울지검 특수1부장은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박 검사장은 병역 문제를 폭로한 김대업씨를 비호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묘하게도 박 검사장은 천 장관과 동향에다 목포고 1년 선배다. /안용현기자 justic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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