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겨울에도 난방비가 아까워 난방 끄고 살아요. 웬만한 거리는 버스도 안 타고 걸어다녀요. 탈북자들 대부분이 그래요.”

6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자유북한방송 사무실에서 만난 탈북자 김춘애(51·가명)씨. 김씨는 지난해 9월 통장을 정리하던 중 자신도 모르게 ‘열린우리당’ 명의로 통장에서 2000원이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했다.

김씨는 탈북자 직업전문학교인 모 정보처리학원 김모 원장의 부탁으로 당원으로 가입했으나, 당비를 내야 한다는 사실은 전혀 듣지 못했다.

2003년 딸 둘, 아들과 함께 입국한 김씨가 정부로부터 받는 돈은 한 달에 고작 20여만원. 이 돈으로는 한 달 임대료 22만7000원에 관리비까지 합쳐 30여만원에 달하는 월세조차 내기 빠듯했다.

김씨는 모자란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식당일을 했지만 하루 손에 쥐는 돈은 겨우 2만~3만원. 다리가 아파 병원을 찾았지만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병원문을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2000원은 저들에게는 푼돈이겠지만 일가 친척도 없는 탈북자들에게는 생명줄과 같다”며 “벼룩의 간을 빼먹지”라고 말했다.

양천구에 사는 또다른 탈북자 이영실(가명·47)씨의 통장에서도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4차례에 걸쳐 매달 2000원씩 모두 8000원이 빠져나갔다. 이씨는 열린우리당에 가입한 적도 없다.

이씨의 남편 손정길(가명·53)씨는 1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 탈북자들은 북한에서도 평생 노동당비를 냈는데 여기 와서까지 알지도 못하는 당비를 내야 하느냐”며 “우리 탈북자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무시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밸이 난다(화가 난다)”고 말했다. 손씨는 막노동을 하려고 해도 나이가 많아 몇 달째 일거리를 구하지 못한 데다 요즘은 간경화까지 겹쳤지만 병원은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아내인 이씨가 얼마 전 담석 수술을 받아 정착금마저 바닥날 형편이기 때문이다. 손씨는 “2000원이면 도대체 라면이 몇 개예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생긴 나라기에 이렇게 멋대로 돈을 빼가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손씨는 끝으로 “내 주변에 같은 피해를 입은 이들이 20여명쯤 돼요. 그런데 우리 돈은 어떻게 보상받나요?”라고 물었다.
/안준호기자 liba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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