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일변도 교육을 해서는 학생이 갈수록 줄어든다.

’남북 모두 조국’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재일한국인과 한국에서 새로 건너온 사람은 물론 귀화한 조선인의 자녀들도 배울 수 있는 교육으로 바꾸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조총련은 나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선초중급학교를 운영하는 조선학원 이사장에서 전격 해임된 이강열(李康烈. 58)씨가 6개월 여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아사히(朝日)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 ’아에라’는 12일자 최신호에 이강열씨의 이야기를 실었다.

다음은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

이강열씨는 지난 5월 23일 오카야마(岡山) 조선학원 이사장에서 갑자기 해임됐다. 오카야마조선학원은 구라시키(倉敷)시에서 조선초중급학교를 운영하는 재단. 그는 10년 이상 이사장을 맡아왔다.

파칭코를 경영하는 그는 연간 650억엔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가로 20년 이상 조선학교에 재정지원을 해왔다. 총련계 상공회의소와 축구협회 임원도 지냈다.

일본 프로축구 J리그 히로시마 소속 선수이면서 월드컵 축구 북한 대표선수로 출전했던 이한재(李漢宰. 22)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을 이사장에서 해임하려는 움직임을 눈치채고 변호사와 함께 이사회 참석을 시도했다. ’이사회 무효’를 선언하기 위해서였지만 입구에서 총련 관계자가 변호사의 입장을 막아 혼자 참석했다. 들어가자 마자 해임 안건이 상정되더니 다수결로 해임이 결정됐다. 후임 이사장에는 총련 오카야마현 본부 간부가 뽑혔다.

이 간부는 이사로 선임된 적이 없다. 이사가 아니면 이사장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사회 자체가 무효다. 시기를 보아 지위회복과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생각이다.

조선학교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건 학생이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에 165명이던 구라시키학교의 학생수는 작년에 105명으로 줄었다. 신입생은 작년에 6명, 올해는 7명이었다. 아이를 적게 낳는 소자화(少子化)현상 탓 만이 아니라 학교에 매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논의는 8년전부터 있었지만 조총련이 받아들일리 없어 논의수준에 머물렀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화해무드가 조성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2003년 4월 도쿄(東京)에서 민족교육을 생각하는 집회를 열었다. 조총련 중앙에도 참석을 요청했지만 오지 않았다. “그 모임은 민족교육을 3억달러에 한국정부에 팔아 넘기려는 것”, “참가자는 모두 잘린다”는 중상비방이 들렸다.

2004년 4월 입학식후 학부형과 조선학원 이사, 총련 오카야마현 본부위원장, 지부위원장 등 30여명이 3-4시간 토론끝에 ’북과 남 양쪽을 가르치자. 재일동포의 자녀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교육을 하자. 어느 쪽이 선인지, 악인지는 따지지 말자. 본토사람을 초청해 조선어와 영어교육을 강화하고 일본어는 일본 교과서로 일본인 선생이 가르쳐도 좋지 않겠느냐“는 시안을 마련했다.

그 직후 총련 현본부위원장이 이사장 사임을 요구해왔다. 그는 그때까지 내 의견에 동조했었다. 그런 그가 ”조직없이는 동포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는 기가 질렸다.

걱정되는 것은 구라시키학교의 운영이 어렵다는 핑계로 토지와 건물 등 학교를 팔아 버리는 일이다. 담보 잡힌 적이 없으니 팔면 수억엔은 될 것이다.

해임된 후 학교 지원금을 별도의 통장에 넣어 동결해 놓고 있다. 언젠가 이사장으로 복귀해 ’열린 민족교육’에 쓸 생각이다.

내가 없어도 학교를 운영할 수 있다고 했지만 교사들의 보너스가 8월에 5만엔, 12월에는 아예 없다고 한다. 내가 오해하고 있는 거라면 좋겠지만 학교를 빚 갚는데 쓰고 싶은 총련으로서는 내가 방해가 됐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고교때까지 조선인이라는 걸 숨기고 살았다. 그런 상처를 안고 컸다. 그래서 4남1녀를 모두 조선학교에 보냈다. 조총련은 동포사회에 큰 공헌을 해왔다. 변하라는 요구는 하지 않겠지만 살아남으려면 시대에 맞추고 동포의 요구에 맞춰 스스로 변해야 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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