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상선의 동시다발적인 한국 영해 침범사건은 한국 군부와 정부를 동시에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만들었다.

군으로선 명백한 영해 침해인데도 이를 저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다는 점에서 체면도 구기고 군부 내부의 불만으로 번질 수도 있다. 또 정부로선 가뜩이나 민심이 흉흉한 판국에 터진 이 사건으로 인해 『햇볕정책에만 안주해 영토보호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강한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 당국은 특히 북한 선박이 4일 오후 또다시 영해를 침범했음에도 북한 선박이 우리 함정보다 크다는 이유로 경고사격이나 나포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바로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둔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노림수를 두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북한의 속셈

지난 2·3일에 이어 4일에도 연달아 북한상선들이 우리 영해를 침범한 데다가 남북한 간의 해상휴전선이랄 수 있는 연평도 인근 NLL(북방한계선)까지 침범한 사실은 북한이 상부지시에 근거해 치밀한 사전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일종의 「군사 작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일반상선들의 단순한 항로단축을 위해 이런 일을 일으켰다기보다는 안보적으로는 한국군의 영해 감시권과 능력을 사실상 와해시키고 정치적으로는 국내 여론들을 분열시키려는 고도의 음모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군 조치 및 반응

북한 상선이 또다시 제주해협 영해에 본격 진입한 4일 밤 합참과 해군 작전사, 해경은 밤새도록 긴박하게 움직였다. 사전통보 없이 영해를 침범할 경우 강경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발표된 뒤 사실상 첫 「도발」이었기 때문이다.

해군과 해경은 북한 선박이 6300여t으로, 우리 함정보다 2배 이상 커 99년 연평해전 때처럼 선체로 밀어내는 「밀어내기」 작전을 펴지 못했다. 대신 앞과 좌우에서 「호위」해 함께 항해하며 정선명령을 여러 차례 내렸으나 북한 선박이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에 대해 정부가 합참 작전예규와 유엔사 교전규칙에 따라 단호히 대처한 뒤, 북한과 협상을 벌여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을 받으며 시간을 두고 개선책을 논의할 수 있었는데 너무 쉽게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의 대응

외견상 정부는 비교적 「차분한」 대응을 하고 있다. 3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에서 정부는 우리 영해는 물론, 군사적으로 민감한 NLL통과에 대해서도 북한 민간선박의 선별적 통과 허용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이 같은 방침을 정한 것은 우선 미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전면 중단된 남북관계를 이 사태로 더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더구나 정부의 강경대응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후퇴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된 것으로 보인다.
/유용원기자 kysu@chosun.com
/신동흔기자 dhsh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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