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비판의 성역이냐”며 진보의 변화를 주장했던 민주노동당 박용진 전 대변인이 지난 2일 납북자가족협의회 최우영 회장을 만났다.

최씨는 1987년 납북된 동진호 어로장 최종석씨의 딸로, 최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납북자 송환을 호소하는 편지도 썼다.

만남은 박씨가 먼저 제의했다. 박씨는 11일 최씨와의 대화 내용을 자신의 홈페이지(www.kdlp.pe.kr)에 올려놨다.

박씨는 “(그동안 납북자 문제를 외면만 해온 데 대해) 스스로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고 했다. 박씨는 진보진영의 납북자 문제 외면을 ‘집단망각’이라면서, “북한 인권 문제를 언제까지 보수단체의 전유물로 둘 것이냐”고 했다.

박씨가 전한 최씨의 얘기를 최씨 입장에서 재구성했다.

‘사람들은 나를 막연히 보수·우익으로 생각하겠지만, 건강보험공단에 다니는 나는 민주노총의 빨간 조끼를 자랑스러워하는 사회보험노조 조합원이다.

사회보험노조엔 민노당 당원도 수백명이다. 그러나 아버지 문제에 대해 민노당이나 민주노총은 관심이 없다. 우리를 도와주는 단체들도 있다. 같이 성명서를 내주고 집회도 한다.

내가 보수단체와 같이 한다고 해서 우리를 ‘보수적·우익적’이라고 비난하는데, 난 그들이 고마울 뿐이다.

5년 동안 진보단체에서 먼저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 박용진 민노당 전 대변인이 만나자고 연락을 했다. 그동안 쌓였던 얘기를 해줬다.

올해 초 서울 대학로에 있었던 노동자 집회에 갔다. 민노당 최고위 간부가 연단에서 장기수를 ‘통일일꾼’이라고 소개했고, 참석자들의 박수를 유도했다.

납북자나 장기수나 비슷한 처지인데, 장기수들에겐 저리 정성이면서 우리 가족에겐 왜 이리 무관심한가. 화가 났다. 연단 밑으로 가서 민주노총 조합원임을 밝히자 그 간부는 반겨줬다.

그러나 ‘납북자가족협의회장’이라는 명함을 건네자 안색이 변했다. 급한 일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 얼마나 서러웠던지…. 우리 가족은 노조원만큼의 대접도 못 받는구나. 눈물이 났다.

입고 있던 빨간 조끼를 던져 버리고 싶었다. 우리 사회보험노조 간부에게 따졌다.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아느냐고, 왜 우리 가족 얘기는 한마디도 않느냐고. 차라리 한국노총으로 가고 싶었다.

나의 노조와 민주노총, 민주노총이 만든 민노당이라면 납북자를 둔 노동자 가족의 고통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박씨에게 이런 얘기를 하니 눈물이 자꾸 나오려 해서, 시선을 식탁 끝에 고정시키고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박씨가 “혹시 당원 아니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우리 아빠 문제, 잊혀진 노동자 가족을 외면하는 당에 내가 왜 가입하느냐고도 했다. 조금 미안했지만 솔직한 심정이었다. 박씨도 계속 미안하다고 했다. 음식은 끓고 있었지만 누구도 손을 제대로 대지 못했다.’

최씨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주변의 추천을 받아 유명 인권단체들을 찾아갔다가 상처만 받았다, 납북자인지 월북자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었다”면서 “기가 찼다”고 말했다.
/정우상기자 imagin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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