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란 단어가 북한의 장전항에 가면 뭘로 변할까? 왜 변하느냐는 질문은 부질없다. 하여튼 달라지니까. 정답은 ‘에이치’다. 사정을 설명하면 이렇다.

최근 민주당 의원·당직자들의 금강산 관광을 취재하기 위해 현대의 금강호 선상에 오른 기자는 깜짝 놀랐다. 타 언론사 기자가 가슴에 단 방북 신분증에 소속회사 이름이 엉뚱하게 한글로 ‘에이치 일보’라고 표기돼 있었기 때문이다.

괴이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 마침 곁에 있던 한 경제신문 기자의 방북 신분증을 들여다보았더니 역시 직장명은 ‘에이치 경제신문’으로 되어 있었다. ‘한국’이란 글자가 동해항을 떠나면서 모조리 ‘에이치’로 달라진 것이다. 현대 측이 아예 그렇게 ‘알아서’ 만든다고 했다.

실소(실소)가 나왔지만 정녕 웃어넘기지 못할 현실이었다. ‘한국’이란 이름을 달고 가면 북에 무슨 일이 생길까? 어차피 북한의 일반주민과는 만날 기회도 없는데 그들을 ‘오염’시킬 일이 뭐 있다고…. 우리 일행 중 한 명은 “그러면 연예인 ‘김한국’씨는 ‘김에이치’로 이름을 바꿔야 금강산에 오겠구먼”이라며 씁쓰레했다.

장전항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이후 ‘한국’이란 이름은 최소한 장전항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된 일이 없다고 말했다. 기업체에 ‘한국’이란 이름이 들어간 기업인들도 모두 직장명을 ‘에이치’로 바꿔야 했다. 그는 “이밖에도 드러나지 않은 여러 가지 금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는 남·북한의 평화공존이다. 서로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고, 상대를 해치지 않으며 평화롭게 살아가자는 것이다.

‘한국’이란 단어가 북에서 복권되는 때가 진정한 공존의 시작 아닐까. /최준석 정치부차장대우 js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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