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도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요즘 서울 서초동 법원 청사에서 만나는 판사들마다 ‘강정구 파동’를 화제로 올린다. 법관들의 얘기를 요약하면, 정권에 의해 무시로 행해지는 사법권 침해와 사법부 무시 행태가 도(度)를 넘었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법무장관의 강 교수 불구속 지휘는 ‘구속 여부는 법원의 고유권한’이란 원칙을 벗어난 것”이라고 했다. 헌법 제12조는 검사가 청구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으로 죄지은 사람을 구속하도록 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형사소송법에 명시하고 있다.

천정배 장관은 지난 12일 사상 초유의 지휘권을 발동하면서 ‘불구속 수사’의 대원칙과 함께 강 교수가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했다. 여권 핵심부 인사들은 천 장관이 제시한 이 기준을 앵무새처럼 반복·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인신(人身)구속 기준은 이것뿐일까? 아니다.

연간 11만명이 넘는 구속 피고인들은 이 기준에 못 들어서 구속되는 게 아니다. 구속 판단 기준이 더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한 재판연구관은 “판사들은 ‘사안의 중대성’과 함께 ‘재범(再犯) 및 반성 여부’ ‘범죄로 인한 영향’도 고려한다”고 했다.

그는 “강 교수가 최근에 쏟아낸 발언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중대범죄”라고 했다. 강 교수는 2001년 평양의 ‘만경대 발언’ 파문으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나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런 그가 최근 행한 발언들은 재범이며 반성의 태도도 전혀 없는 것이라고 판사들은 지적했다. 판사들은 “강 교수의 발언으로 인한 국가·사회적 여파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강 교수의 구속 영장이 법원에 접수되면 구속될까?” 기자가 만난 판사들은 “기록을 봐야 정확히 판단하겠지만, 그동안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았다. 마침 천 장관도 18일 국회 법사위에서 “강 교수가 검찰에 송치되면 구속될 것 같아 불구속 지휘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더구나 검찰은 강 교수의 활동 재개 시점에 주목한다. 북한노동당의 대남 통일 전위기구인 반민전(반제민족민주전선)의 홈페이지 ‘구국전선’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해방 60년인 올해는 주한미군 철수의 원년이며, 맥아더 동상 철거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2년간 침묵하던 강 교수가 그후 입을 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강 교수가 북한의 ‘충실한 전사(戰士)’인지 여부를 더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작년에 국가보안법 폐지가 무산되자 ‘지휘권 발동’ 조항을 끄집어내 국보법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려는 것이 정권의 속셈 아닙니까?”

판사들은 또 여권 인사들의 ‘시대 정신’ ‘민주적 통제’ 등의 발언도 사법권 침해라며, 사법부에 대한 예의염치(禮儀廉恥)도 없이 이런 발언이 나온다는 것이 불쾌하다고 말했다. 여권 인사들이 송두율씨 사건 재판을 거론하며 ‘국제적 망신’ 운운한 것이나, 구속을 주장한 검찰총장을 ‘시대정신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묘사한 발언 등이 사법권 침해라는 것이다.

“나중에 송두율 교수나 강정구 교수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이 정권은 그 판사를 ‘반개혁’ ‘시대정신을 모르는’ 판사로 매도할 것 아닙니까? 이런 걱정을 하고 위축되는 만큼 사법권은 이미 침해받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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