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콘 득세 막고, 5차회담 분위기 조성하고’

11월 초로 예정된 제5차 6자회담을 대비한 각 국간 본격적인 사전협의를 앞두고 미국이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변화를 위해 공식.비공식적인 설득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식적인 활동은 주로 6자회담 미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의 입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힐 차관보는 11일 뉴욕 맨해튼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열린 포럼에서 “북한이 합의를 준수한다면 많은 경제적.외교적 기회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공동성명 이행의 첫 조치는 누락없는 완전한 신고”라며 북한의 ‘자발적 협력’을 강조한 뒤 “그러면 미국도 상응 이행의무 조치를 절대적으로 완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약속’을 지킬 경우 응당 돌아갈 긍정적인 요소들을 강조하면서 북한을 ‘부드럽게’ 설득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북한이 핵포기 합의를 저버리면 정말로 ‘고립된 황야’에 내던져질 것”이라는 강도높은 비유로 북한을 압박했다.

그의 말 속에 강온 양면이 다 내포되어 있다.

북한이 약속을 지키도록 ‘북돋워’ 주면서도 그러지 않을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엄포로 미국내 강경파를 달래는 고도의 정치적 화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4차 6자회담 타결 이후 미국 의회 일각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6자회담 회의론을 의식한 때문인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런 회의론은 6일 열린 북핵청문회에서 헨리 하이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공동성명은 미국과 북한간 논란의 핵심인 북한 핵프로그램의 해체시점 문제를 다루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시작됐다.

하이드 위원장은 대북 에너지 제공에 미국도 참여한다는 점을 거론하며 “북한에 중유를 추가로 제공할 경우 엄청난 반발에 직면할 것”이라고 까지 말했다.

랜토스 의원도 “북한이 11월 5차 6자회담에 복귀해 또 다시 지연전술을 쓸 경우 미 의회는 더이상 인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회의론에 기름을 부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같은 의회 분위기 등 미국내 조건들이 힐 차관보로 대표되는 협상파인 국무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했음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북미는 5차회담 개최 이전에 뉴욕접촉을 통해 꾸준히 의견을 나누고 있다. 여기서 미국은 조심스레 대북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전화를 통한 접촉에서 미국은 폐기되어야 할 대표적인 시설인 영변 원자로 가동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4차회담 합의문이 북한의 행동을 담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미국내 네오콘의 6자회담 회의론을 설득할 명분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북핵문제 해결을 한 걸음 더 앞당길 수 있는 힐 차관보의 방북을 위해서도 그러한 북한의 유화적인 제스처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도 깔린 듯 하다.

물론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은 6자가 모두 관련된 행동조치에 포함되는 만큼 5차회담 이전에 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평가가 대체적이지만 미국입장에서는 내부 분위기 조성을 위해 ‘강요가 아닌 타진’은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협상파인 미 국무부에 “힘 좀 실어달라”는 의미인 셈이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13일 “북미접촉은 진행 중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편 힐 차관보는 11일 연설에서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아닌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에 의한 검증을 거론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런 발언은 미국의 IAEA 사찰 주장에 북한이 그간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기 때문에 이 보다는 강도가 약하면서도 정치적 색채가 강한 상임이사국에 의한 검증을 거론함으로써 5차 6자회담에 앞서 북한의 성의있는 조치를 우회적으로 촉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상임이사국에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 6자회담 참여 3개국이 포함돼 있는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 당국자는 “힐 차관보의 발언은 IAEA에 의한 검증을 대체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안다”며 “4차회담 합의문에도 ‘핵무기비확산조약(NPT)과 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한다’는 문구가 있다”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이같이 미국내 분위기와 북미간 물밑 접촉이 한창인 가운데 우리측 수석대표인 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5차회담을 앞둔 첫 협의를 위해 15일께 미국으로 떠나며, 힐 차관보도 내주 중으로 한국, 일본, 중국 등을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는 등 관련국간 조율이 본격적으로 막이 오르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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