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90년대 중.후반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말 그대로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고 굶어 죽는 사람도 많았다. 북한은 이 때를 ‘고난의 행군’ 시기로 규정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은 1938년대 말∼1939년 초 김일성 주석이 일본군의 토벌작전을 피해 혹한과 굶주림 속에서 100여일 간 벌였다는 행군을 일컫는데 1995년부터 6년 동안 경제난 심화에 따른 체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대중 노력동원 캠페인이다.

정기풍 김철주사범대학 정치사학과 강좌장(학과장)은 1일 미국소재 온라인 매체인 민족통신과 특별대담을 갖고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벌이게 된 원인을 밝혔다.

정 교수는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후 2000년 10월 노동당 창건 55돌 을 기해 고난의 행군이 끝났다고 선언하기까지 고난의 행군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사회주의 시장의 붕괴 ▲잇단 자연재해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열강들의 대북 고립.봉쇄.압살 책동을 3가지를 꼽았다.

우선 사회주의 국가 붕괴로 인해 대외경제가 꽉 막히게 된 것을 들었다.

그는 “사회주의 나라들과 경제관계를 가질 때는 형제 나라니까 우리한테 봄에 휘발유가 필요하면 돈 안주고 가을에 주겠다고 하고 먼저 가져온 후 가을에 과일이면 과일, 물고기면 물고기를 주었다”며 “이렇게 경제를 운영했는데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시장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람들은 고지식하게 뭘 모르고 계약도 대강 체결해 놓고, 사회주의 때는 어깨 툭 치면 ‘아, 합시다’했는데 자본주의는 안 그렇고 표받침 하나 틀리지 않게 하면서 ‘안 된다, 안 된다’ 하니까 대외경제 관계가 절벽 같은 난관에 딱 봉착했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로는 90년대에 잇달아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가 겹친 사실을 지적했다.

그는 “90년대 접어들면서 100년만의 장마 등 연이은 자연재해가 있었다”며 “제일 심각했던 게 저수지의 댐이 다 터져 농토 수만 정보를 쓸어갔다”고 말했다.

또 “자연재해가 겹치다 보니까 탄광들이 침수되고, 석탄 생산을 못 하니 화력발전소가 못 돌아가 전기가 죽고 화학공업이 죽었다”며 “전기가 죽으니까 철도가 다 마비돼 그 전에는 기차가 일분만 연착해도 야단을 때렸는데 고난의 행군 때는 달리던 기차가 레일 위에서 하루동안 멎어도 대책이 없을 때도 있었다”고 밝혔다.

나아가 “철도가 멈추자 광석을 실어나르지 못해 용광로가 멎어 철이 안 나와 기계공장이 멎고 경공업공장들이 다 타격을 받는 등 연쇄반응이 일어나 공장굴뚝이 숨죽었다”며 “이렇게 공장이 하나 둘 숨죽기 시작해 연쇄반응이 나 경제가 딱 막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막말하지만 그때는 남들이 업수이 볼까봐 그런 말 일체 비밀에 부치고 못했다”며 “하지만 정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털어놨다.

정 교수는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열강들의 대북 고립.압살 책동을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그는 “그때로 말하면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다른 나라들이 다 무너지고 중국은 사회주의 깃발을 들고는 있지만 워낙 큰 나라니까 호락호락 할 수 없는데다가 중.미관계는 부드러운 관계가 오래 지속돼 왔다”며 “미국은 우리(북)를 미워했는데 50년대 군사적으로는 안됐고 사회주의는 다 무너졌지 경제적으로 어렵지, 이번 기회에 압살하자고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대북 군사적 압력과 인권, 종교, 탈북자 문제 같은 정치적 압박, 경제적 봉쇄 등 “정치, 군사, 외교, 경제적으로 우리를 압살하기 위한 책동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연합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