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오른쪽)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17일(현지시각)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열린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뉴욕=연합

19일 오전 8시30분, 댜오위타이(釣魚臺) 회의장. 6자회담에 참가하는 모든 대표단들이 ‘마지막 회의’라고 했던 자리였지만, 정작 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4시간여 가까이 회담이 지연된 끝에 북한의 핵 포기 등을 담은 6자 공동성명이 나왔다.

◆ 한국이 미국 설득

막판까지 회담이 난항을 겪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경수로’ 때문이었다. 합의문에 꼭 넣어야 한다는 북한과 ‘그럴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이 맞섰던 것이다. 경수로 관련 문구를 담은 수정안은 한국이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정부는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과 경수로 문제에서 미국이 한발 양보하도록 설득했다.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에 있는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직접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설득했다. 캐나다를 방문 중인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도 라이스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이 결단을 내려서 합의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결과 미국도 17일부터 강경 입장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했고, 결국 ‘적당한 시점에 경수로 제공 문제를 논의한다’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미국은 19일 마지막 순간에도 북핵 폐기와 경수로 제공 논의의 선후(先後) 관계로 합의를 꺼렸다.

결국 북한 외에 나머지 5개국이 “합의문의 ‘경수로 논의는’는 핵 폐기·검증이 완전히 이뤄진 뒤에 한다는 의미”라고 약속을 하면서 합의문을 수용했다.

그러자 이번엔 합의문의 ‘평화공존(coexist peacefully)’이라는 단어가 또 문제가 됐다. 이는 과거 냉전시대에 공산진영이 미국에 요구하던 역사성이 있는 말이어서 미국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공산국가인 중국도 대외 정책의 주요 원칙으로 이 말을 쓰고 있다.

결국 ‘평화적으로 공존(live together peacefully)’이라는 말로 바꾸면서 마지막 고비를 넘었다. 이어 이날 오후 1시쯤 6개국 대표단의 기립박수 속에 타결됐다고 한다.

◆ 미국 입장 변화 왜?

국제 사회에서는 미국이 막판에 이번 성명을 받아들인 것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부시 정부가 북핵 회담 결렬을 부담스러워했다는 지적이다.

김태우 국방대학원 교수는 “부시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에,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이라크 문제 등이 겹친 상황에서 북핵까지 결렬되는 상황은 피하려 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번 합의를 놓고 미국 내에서 적잖은 논란이 일 전망이다. 무엇보다 부시 행정부는 불법 행위에 대해 보상할 수 없다는 원칙을 지켜왔고, 평화적이라고 천명했던 핵 시설을 악용한 전력이 있는 북한은 바로 그 같은 경우에 해당됐다. 이번 합의로 지금껏 부시 정부가 밝혀온 핵 원칙이 상당히 흔들리게 됐다는 것이다.

또 미·북의 가운데에서 중재 역을 자임한 한국의 태도를, 한·미 북핵 공조와 관련지어 탐탁하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다./ 베이징=권대열기자 dy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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