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절 받으세요."

명절날 장난스럽게 세배할 줄만 알았던 6살 아들은 어느덧 환갑이 지난 노인으로 변해 54년만에 화면을 통해 큰절을 했다.

15일 오전 8시 인천시 연수구 연수동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4층 화상상봉실.

변석현(96.인천시 중구 전동) 할아버지는 북의 두 아들 영철(61)씨와 영창(57)씨로부터 큰 절을 받고는 북받치는 눈물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래,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변씨는 피난 당시 두 아들을 함께 데리고 나오지 못한 게 못내 미안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변씨는 1951년 1.4 후퇴 때 황해도 연백군에서 부모님과 아내, 두 아들과 딸을 남긴 채 큰아들 영하(69)씨만 데리고 남으로 피난했다.

"저희는 북에서 어업학교 졸업하고 과수기술자가 됐어요. 잘 살고 있어요. 아버님."
두 아들이 잘 살고 있다는 말에 변씨는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그동안 궁금했던 점들을 물으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물론 아내와 딸이 이미 숨졌다는 소식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북의 아들들이 고향에 계속 살며 기술자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남측의 큰 손자와 북측의 작은 손자 이름이 `준식'으로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땐 `참 묘한 우연'이라며 크게 웃기도 했다.

화상상봉 시간으로 주어진 두시간이 거의 다 되자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안타까움에 숙연한 분위기로 변했다.

"내가 언제까지 살런지는 모르지만 영철아, 영창아, 통일돼서 꼭 다시 만나자."/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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