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으로 혈기가 넘쳤던 젊은이가 고향을 떠난지 30년만인 12일 환갑을 넘겨 주름까지 푹 패인 초로의 노인이 돼서 귀향했다.

월남전 초기인 1971년 월남에 파병돼 2년 동안 근무하다 돌아와 고향인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에서 ‘돈 많이 벌어 오겠다’며 오징어잡이 배를 탔던 고명섭(62)씨가 납북된 것은 1975년 8월.

고씨가 두번째로 탔던 오징어잡이 어선 천왕호는 선원 31명을 태우고 오징어가 많기로 유명한 동해상 대화퇴 어장에서 조업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됐다.

북한으로 납북된 고씨는 평남 성천에서 양계장 노동자로 일하다 70년대 후반 결혼했고 1남1녀의 가정을 꾸리게 됐다.

이때까지 어머니 김영기(84)씨는 아들의 생사조차 모르고 있었다.

고씨의 큰 형이 7년전 세상을 뜨자 어머니 김씨는 아들을 죽은 것으로 생각, 제사까지 지내 왔다.

그러던 1997년 느닷없이 어머니 김씨에게 북의 아들 고명섭씨가 보낸 편지 한통이 날아왔고 가족들은 설렘속에 2001년과 2003년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 뿐이었다.

납북자가족모임에서 고씨의 탈북지원에 나섰고 드디어 지난 3월 24일 고씨는 평남 성천을 출발해 신의주를 거쳐 같은 달 28일 중국 단동에 도착, 탈북에 성공했다.

그러나 고씨는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되돌아 가겠다는 요청을 하는 등 고민을 거듭했고 어머니 김씨 등의 간곡한 설득 끝에 지난 7월 12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던 고씨는 30년만에 꿈에 그리던 고향땅, 오징어 냄새가 아직 풀풀나는 강릉시 주문진을 찾아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 안겼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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