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수재 때 받은 도움 갚고 싶어"

“그 해 여름에 비가 무척 많이 와서 논이고 밭이고 모두 물에 잠겼어. 뭐 하나 건져 볼 생각도 못하고 탄식만 하고 있는데 북쪽에서 보내준 쌀 닷 말을 받았지… 이젠 내 차례야. 죽기 전에 꼭 그 빚을 갚아야지.”

1984년 전국을 강타한 수해로 농작물을 모두 잃고 북한이 보내 준 쌀 5말을 구호품으로 받았던 당시 50대 초반의 농부가 70세를 훌쩍 넘겨 쌀 1000가마를 북에 보내기로 했다.

8일 오전 11시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팽성미곡처리장. 대대로 평택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 온 홍한표(73·서탄면 황구지리)씨가 마당 한가운데 가득 쌓인 쌀 포대를 어루만졌다.

“이게 내일(9일)이면 북으로 간대. 북쪽엔 굶는 주민들이 많다잖아.”

80㎏들이 1000가마. 쌀 5말이 40㎏임을 감안하면 홍씨가 84년 받았던 쌀의 꼭 2000배에 해당한다.

그 해 8월 말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준’은 189명의 사망자와 2500억원의 재산손실을 내는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 황구지리에서 논 50마지기(1만평)의 농사를 짓던 홍씨 역시 논이 모두 물에 잠겨 낱알 하나 건지기 어려운 곤경에 처했다.

그러던 차에 북한에서 같은 해 9월 말 쌀 5만석(1석=144㎏)과 옷감 50만m, 시멘트 10만t 등의 구호품을 남한에 보냈고 그 중 홍씨에게도 쌀 5말이 돌아가게 된 것.

“그때도 먹을 게 없던 시절은 아냐. 하지만 막상 북쪽 쌀을 받고 보니 같은 동포구나 싶더라고. 늙으신 부모님과 애들 데리고 얼마나 고맙게 먹었던지.”

홍씨는 지난달 자신이 갖고 있던 쌀 250가마를 내놓았고 농협에서 750가마를 추가로 사들였다. 1000가마의 쌀값만 1억7000만원. 도정·포장 비용도 1000만원이 들어갔다.

장남 홍성동(40)씨는 “처음엔 놀랐으나 당시 북에서 보낸 쌀을 기억하고 있는 7남매도 아버지의 뜻에 찬성했다”고 말했다.

이 쌀은 9일 도라산 CIQ(출입국관리소)를 통해 개성으로 운반, 북한 농업근로자동맹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한다.

홍씨는 “이 쌀이 다른 데 쓰이지 말고 꼭 기아에 시달리는 북쪽 주민들에게 돌아가길 바란다”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평택=배한진기자 bhj@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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