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전선 방문 김정일의 97년 4월 강원도 동부전선 1211고지 방문 때 찍은 사진. 김정일이 감시초소에서 현지 지휘관으로부터 상황 설명을 듣고 있다. 북한 화보 '조선'

1996년 2월 동해에 인접한 비무장지대(DMZ) 내 강원도 월비산 지역. 보초를 서고 있던 우리 군 사병이 망원경으로 북측을 감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북한 군인들에 둘러싸여 북쪽에서 남쪽을 관찰하는 김정일을 발견했다. 김정일도 같은 시간 남측 초소를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방에서 근무 중인 우리 군 관계자들은 “김정일은 휴전선 부근을 자주 시찰한다”며 “그러나 실제 우리 초병에 발견된 일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선전 매체들도 간혹 김정일이 포대경(砲臺鏡)을 통해 남쪽을 관찰했다는 보도를 하곤 한다.

김정일은 왜 이처럼 휴전선 부근을 자주 찾을까. 김정일은 항상 군인들에게 또는 주민들에게 뭔가 긴장감을 조성할 필요가 있을 때 휴전선을 찾는다.

그러고는 대개 전투력을 강화하기 위한 ‘강령적 지침’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강령적 지침은 북한식 표현으로 군인들이 꼭 지키고 따라야 할 최고사령관의 지시나 명령을 뜻한다.

예를 들어 ‘최전선 일대를 방어하고 있는 부대의 임무가 매우 중요하다’거나 ‘우리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적들에게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적들과의 대결전에서는 단 한 번의 양보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이 포함된다.

특히 미국에서 대북 압박 같은 용어가 나올 땐 ‘우리를 건드리려는 그 어떤 침략자도 용서치 않고 사생 결단으로 싸우고 말겠다는 투쟁정신에 당할 자는 세상에 없다’는 내용이 들어가기도 한다.

김정일이 휴전선 부대를 얼마나 자주 방문하는지에 대한 통계는 없다. 그러나 2004년의 경우 김정일의 92회에 달한 공개활동 중 군 관련 활동이 60회(65%)인 점으로 미루어 휴전선 시찰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한 전문가는 김정일의 군부대 방문 중 80% 가량이 휴전선 부근에 집중돼 있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북한의 신년사에 무려 41번이나 등장했던 선군(先軍)이란 표현도 김정일의 전방 부대 방문에서 유래됐다.

김정일이 김일성 사망 직후인 1995년 1월 1일 인민군 다박솔 초소를 방문했을 때 군 지휘부에 “우리는 미국과 판가리(죽기살기식)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러자면 적들과 총대로 맞서야 한다”고 지시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북한측 주장이다.
/ 권경복기자 kk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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