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10일 독일 베를린에서 가진 동포 간담회에서 “때로는 남북관계에서도 쓴소리를 하고 얼굴을 붉힐 때는 붉혀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북한은) 남북간에 비핵화 합의를 했으면 지켜야 하는데 전적으로 무시하고, 미국의 위협이 있다는 이유로 한국은 전혀 무시하고, 미국과의 관계에서 핵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대로 한쪽은 끌려가는 상황이 돼서는 건강한 남북관계 발전이 어렵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2년여 동안 북한정권을 직접 겪어보고 난 후 도달한 대북 인식이다.

정부는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심중(心中)을 대변해주고 북한의 요구에 싫단 말 한마디 없이 받아들여 왔지만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철저한 무시와 도(度)를 넘는 일방적 요구의 되풀이뿐이었다.

노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도 ‘일리가 있다’고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두둔하고, 이 와중에도 핵개발과 분리해 개성공단 사업을 비롯한 대북 경협과 지원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그 대가로 북한 정권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핵 보유 선언과 철저한 한국 무시뿐이었다. 정부는 북한 인권이나 탈북자 문제에서도 북한 정권의 눈치만 살피다 국제사회와 엇박자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지금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은 북한의 참가 거부로 1년 가까이 교착상태다. 북한은 ‘6자회담은 군축회담 형식이 돼야 한다’, ‘미·북 간에 정식 외교관계가 수립된 후에야 핵무기를 해체할 용의가 있다’는, 국제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새 제안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미국등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북한에 대한 압박을 모색 중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북한을 대변해온 한국의 입장만 갈수록 난처해지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 미 행정부 당시 대북정책 조정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북한을 6자회담으로 끌어내려면 ‘경제적 압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발언 역시 북한을 병아리 품듯 해온 한국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유연(柔軟)이냐 강경이냐 하는 대북 처방의 성격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무엇이 북핵 해결의 효율적 수단인가 하는 실용주의적 사고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만이 북한과 한국, 그리고 한반도 전체의 운명이 주변국의 정치적 도마 위에서 그들의 뜻대로 재단되지 않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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