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됐던 동진호 선원 임국재씨가 “북한에서 탈출시켜 달라”고 호소한 편지가 공개됐다.

임씨는 2003년 9월, 2004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탈북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임씨는 그후 제3자를 통해 “어떻게든 남한으로 가겠다”는 뜻을 전해온 뒤 연락이 두절됐다.

임씨는 납북 후 조국이 자신을 곧 구해줄 것이라고 믿으며 기다렸지만, 15년 세월 동안 조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임씨가 스스로 온갖 수단을 써가며 탈출을 시도했던 것은 대답없는 조국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국은 자신을 버리고 자기 힘으로 사지(死地)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절절히 느낄 때 임씨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대한민국 정부는 논리 이전에 임씨의 심정이 돼서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임씨는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임씨의 이런 상황을 공개한 납북자 가족모임은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가 임씨의 생사확인, 소재파악을 위해 즉각 대북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모임은 임씨의 탈북시도를 2003년 9월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정부에 알렸다. 그러나 이렇다 할 진전이 없자 마지막 수단으로 공론화를 통한 해결 촉구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납북자 문제에 대해 “당국자 회담이 열리면 논의하겠다”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 정부는 북한핵 보유 선언으로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도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은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인데, 그렇다면 북한에 대해서도 임씨 송환 같은 인도적 조치는 당당하게 요구해야 마땅한 일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과 일본은 북한에 대해 핵 관련 강경대응을 하면서 자국민 보호차원의 요구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미 국방부는 오는 4월 북한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미군 유해발굴작업을 실시할 계획이며,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해 직접 북한을 방문해 일본인 납치 가족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한해 비료다 식량이다 하면서 수억달러 이상을 북에 보내면서 납북된 사람을 찾아오기 위해 제대로 할 말도 못한다면 그걸 어떻게 제대로 된 대화라고 할 수 있겠는가. “북한을 떠나게 해 달라. 남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임씨의 절규를 정부는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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