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와 베트남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귀국에 앞서 “미국이 (북핵에 대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굉장히 민감한 말들이 오가지만 구조적으로 많이 안정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중국·일본·러시아가 북한에 대해 극단적 선택을 해야 할 환경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일본마저도 때때로 경수로 문제가 있지만 미국과 분명히 다르다고 하면서 한반도 안정을 위해 노력해 가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북핵에 관련해 중국·러시아·일본의 입장과 미국의 입장이 따로 있다는 사실과 함께, 한국이 이 문제에선 중국·러시아·일본 쪽에 서 있다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중대 변화를 통고받은 셈이다.

공개석상에서 언제나 한·미·일의 빈틈없는 공조를 말하던 이전 대통령들과는 분명히 다른 발언이다.

국가의 최고 정보를 보고받고 있는 대통령의 발언인 만큼 일반 국민의 상식으로 재기는 힘들겠지만, 일본이 북핵과 관련해 지금까지의 미국 입장 지지를 벗어나 중국·러시아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데 대통령과 판단을 달리하는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뿐 아니라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놓고 한국·중국·러시아·일본과 미국 간의 경계를 선명하게 긋고 이를 공공연히 공표하는 것이, 이 문제가 빚어낼지 모를 미묘한 외교적 파장까지 계산한 발언인지에 대해서도 의아심을 갖게 된다.

대통령은 또 “선거를 치르는 나라나 상대방이나 책임감 있게 대화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북핵은 미국 대선 이후에나 본격 논의할 수 있을 것이란 뜻이다.

이 말 역시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다시피 한 북한과 등을 맞대고 살고 있는 북핵의 핵심 당사자 국가로서 북에 대해 한국의 입장을 천명했다기보다 제3자로서의 상황 해설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북핵 문제는 6자회담이 흐지부지되면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고비에 와 있다. 이를 놓고 한·중·러·일 라인과 미국 간에 견해 차이가 있다면 그 핵심이 무엇인지 정부는 밝혀야 한다.

또한 부시와 케리 후보가 백중세인 미국의 대선 결과에 따라 이 핵심적인 부분에 어떤 변화가 올 수 있다고 판단해서 대통령이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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