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체포된 후 한국정부와의 물밑 협상중에 돌연 중국으로 인계된 탈북자 7인 사건의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난민 지위를 인정했음에도 불구, 이들이 중국으로 인계돼 이후의 탈북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UNHCR가 깊이 개입해도 이들이 자유를 얻지 못한다면 중-러 국경을 떠도는 탈북자들에게는 최고 수위의 경고등이 켜진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러시아 정부가 이번 사건을 처리하면서 인도(인도)주의를 외면하고 막판에 한국정부를 따돌린 것으로 알려져 한-러 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사건 발생 초기에는 호영일(30)씨 등 7명의 한국행에 상당히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모스크바의 UNHCR가 연해주에서 국경수비대의 보호를 받고 있는 호씨 등을 면담하도록 허용했고, UNHCR가 이들의 난민 지위를 인정하자 출국 비자를 발급, 한국행을 사실상 허용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북한은 각자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외교력을 총동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호씨 등이 작년 12월18일 한국으로 출국하려하자 돌연 이를 저지했고, 이어 러시아 국경수비대가 12월30일 전격적으로 이들을 중국 당국에 넘겨버렸다.

한국정부는 러시아 국경수비대로부터 이 사실을 통보받고 러시아 외무부에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외무부는 ‘국경수비대의 독자적 행동’이라고 해명했으나 한국을 무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행동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러시아가 북한을 의식했을 뿐 아니라 다른 탈북자 처리에도 선례가 될 것을 우려해 입장을 바꾼 것 같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러시아 국경이 탈북자들의 탈출 루트가 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러시아가 지난 98년 한-러 외교분쟁 이후 북한과의 관계를 더 강화하려는 움직임의 연장선에서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러시아는 한국과의 외교관 맞추방 분쟁 이후 한반도 문제에서 친북적 ‘좌향좌’ 태세를 보이고 있다. 한 소식통은 “북방외교의 거품이 이제 거의 걷혀가는 단계이며 러시아는 큰 틀의 동북아시아의 구상에서 북한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굳혀가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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