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효환
시인·대산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분단 이래 처음으로 남과 북의 작가들이 다시 만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민족작가대회가 한 차례 연기되더니 답보 상태에 있다.

8월 하순 예정이었던 민족작가대회가 연기된 이래 금강산에서의 실무접촉 한 차례와 몇 차례의 팩스 교신 외에는 별다른 진척 없이 소강국면을 맞고 있는 듯하다.

분단 이래 문학계의 최대의 염원이었던 남북 작가들의 해후, 그리고 말과 글과 정신적 교류의 길을 여는 통일 문학의 길이, 어쩌면 조금씩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은 남북 작가들의 문제에서 연유하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에서의 460여명에 이르는 탈북자들의 대거 입국,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기 방북 조문 무산 등의 ‘악재’에다가 때마침 을지포커스 훈련까지 대회 일정과 겹치면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심정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59년 만의 남북 작가 만남은 또 미루어졌다.

1945년 12월 이기영 한설야 한재덕 등 북의 원로급 작가들이 서울을 방문한, 조선문학가동맹대회가 남과 북의 문학인들의 첫 만남이자 지금까지 마지막 만남으로 남아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때 남과 북의 문인들이 논의한 내용의 핵심은 남과 북을 아우르는 전국문학자 조직의 결성이었다.

분단의 고착화를 예상한 작가들이 민족어와 정신의 통일체를 유지하고자 결의한 자리가 마지막 만남이 된 것이다. 이후 1989년 시도된 남북작가회담도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이토록 오랜 세월과 공력이 들어도 다시 함께 자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준비의 한 축을 맡고 있는 민족문학작가회의에 따르면 지금도 남과 북 양측의 작가들 모두 오랜 단절을 딛고 서로 만날 것을 열망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외적인 여건이 호전되지 못하고 있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6·15남북 공동선언 이래로 남북 관계가 가장 경색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지난 여름부터 이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은 좀처럼 새 돌파구를 찾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듯하다. 더구나 최근 불거진 남쪽의 우라늄과 플루토늄 추출 실험 등 일련의 상황은 더욱 앞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황과 관계없이 남북작가대회는 열려야 하고 남과 북의 작가들은 다시 만나야 한다. 아니, 열렸어야 했고, 만났어야 했다. 문화 없는 민족과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문학은 어렵고 힘들 때 먼저 고뇌하고 새로운 길을 찾는 이정표 역할을 해왔다. 한민족의 삶과 정신을 담아내는 작가들의 만남이 평양에서 묘향산에서 백두산에서 그리고 서울과 한라산으로 이어지는 것을 상상해 보자. 이들의 만남은 가장 비구호적이고 가장 비목적적이기 때문에, 화해와 상생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위한 만남으로 적격이다.

이 만남은 오랜 식민지 시대의 질곡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반세기 이상 갈라진 한반도의 비극을 딛고 본질적인 동질성을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갈라진 민족어를 온전히 회복시키는 자리가 될 것이고, 분단된 상태로 반쪽에 갇혀 있던 상상력이 온전히 복원되는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지금 다시 남북작가대회를 기다리는 것은, 길게는 59년, 짧게는 15년여를 기다려온 남과 북의 문인들이 며칠 혹은 몇 달 더 기다리는 것이 아닌, 온전한 민족어와 정신의 복원이 또다시 지연되는 것이다. 남과 북의 작가들은 지체하지 말고 무조건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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